[돈의 나라] 136화

2018-06-18 01:07
돈의나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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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릉!

벨소리와 함께 눈을 뜬 강민은 손을 더듬거리며 자신의 핸드폰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의 벽돌 폰은 어느덧 한 손에 쥐어지는 크기로 변해 있었다.

관련 기술을 한국의 몇몇 대기업에 넘기고 생산을 시작한 지도 몇 달이 흘러나고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핸드폰은 대한민국의 중요 수출품으로 조금씩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아직 스마트폰과 같은 기능들은 없었지만 세계 시장에서 해외의 기업들과 경쟁이 치열해지면 관련 기술들을 꺼내어 본격적인 치킨 게임이 시작될 터였다.

“여보세요.”

전날 마신 술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때문인지 강민의 이마는 찡그려져 있었다.

자신의 휴식이 방해받은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내 전화를 건 이가 누군지 알게 된 강민은 피식 웃었다.

―어! 형! 쉬고 있었어?

“강우냐?”

남동생이었다.

군인이 되겠다고 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어서는 군복무 중인 동생의 전화에 강민은 반가운 듯이 목소리에 따뜻함을 담았다.

강민이라는 배경 덕분에 동기들 중에서 가장 빠른 진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육군 본부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니 시간이 문제일 뿐 장성까지도 충분히 볼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그 대까지 강민이 계속 지금의 자리에 있다면 국방부 장관도 해 먹을지 몰랐다.

“그래! 어쩐 일이냐? 형한테 전화를 다 주고.”

군인 월급이야 뻔하니 집도 사 주고 가끔씩 용돈도 주고는 했다.

물론 강민에게야 용돈이지 남동생에게 있어서는 몇 년 모은 적금 타는 듯한 느낌일 터였지만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통 크게 돈을 쓰다 보니 나름 인정받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돈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민이었으니 특히나 공직에 있는 사람은 마냥 인색해서는 못 쓴다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비리의 시작이었지만 강민도 팔은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여튼 전역을 한다고 해도 남동생을 위해 사업체 하나 만들어 줄 생각인 강민이었지만 끝까지 자신은 군인이 좋다는 말에 강민은 그런 기특한 동생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어! 그게 형한테 부탁을 좀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전화로 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그러냐? 그럼 퇴근하고 사무실로 와라. 아니면 형이 갈까?”

―아니야! 내가 갈게.

어지간하면 부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동생이 부탁을 할 것이 있다는 말에 강민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들어줄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아무 시간에나 찾아와라.”

강민은 전화를 끊고서는 문을 빼꼼히 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영을 볼 수 있었다.

“식사 하실 거예요?”

“음! 속이 안 좋으니까 콩나물국으로 시원하게 좀 해 줘.”

“그래요. 씻고 나와요.”

어지간한 안방만 한 크기의 욕조로 들어가 몸에서 나는 알코올 냄새와 땀 냄새를 씻어 내고 피로를 풀고 난 뒤에 식탁으로 나오자 커다란 식탁에는 꽤나 진수성찬이 마련되어 있었다.

“누리야! 잘 잤어?”

“아빠! 잠꾸러기!”

“응? 허허허!”

이제는 제법 말을 또박또박하는 어린 딸의 투정이 귀여운지 강민은 다른 이들에게는 잘 보여 주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딸 바보의 모습을 보였다.

정신없이 바빠서 제대로 딸과 놀아 주지도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때였으니 그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이번 주말에 나들이나 갈까?”

“안 바빠요?”

“뭐 하루 정도 시간 빼는 게 힘든 것도 아니고. 일이야 밑에 직원들이 하는 거니.”

강민이 몇 년 만인지 모를 나들이를 하러 가자는 말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낮이 없는 남편에 불만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대한민국에 강민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강민이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아영은 한국 상황이 너무나도 좋지 않게 되어 가는 것에 강민에게 조심스럽게 한국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꺼내었던 당사자였다.

물론 그 전에 한국 정부 관료든 아버지를 통해 들은 말이든 자신에게까지 찾아와 사정사정을 했었다.

더욱이 아영 자신도 강민의 제안으로 한국에서 복지 사업을 진행하며 힘겨워하는 사람들에 안쓰러움을 가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 만나시자고 해요?”

“응? 어! 뭔가 부탁을 할 것이 있다고 하네. 아마 군내에서 나한테 아쉬운 소리 해야 하려나 봐.”

“아쉬운 소리요?”

강민은 이미 자신의 남동생이 하고자 하는 부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국방부 내에서도 강민의 사람, 아니 강민의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알고 싶지 않아도 군 기밀을 들고 와 알려 주는 통에 강민은 남동생이 부탁을 할 것이 무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잘 먹었어.”

세계 최고의 부자답지는 않게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서는 대충 속을 달래고서는 자리에 일어선 강민은 옷을 차려입고 집의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올라타 출근을 했다.

“이건 산전하고 엘진에게 넘기고 현전 자동차한테는 기전 자동차 인수할 생각 하지 말라고 그래. 채권단에는 기전 자동차 살리도록 자금 지원 하라고 지시하고. 마음 같아서는 날려 버리고 싶지만 자동차 산업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강민은 굵직한 사안들을 하나둘씩 교통정리를 했다.

너무 많은 기업들이 난입을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독과점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이미 귀에 딱지가 들만큼 들은 강민이었다.

크게 자동차 산업과 조선 산업 그리고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석유, 제철 등 중화학 공업 중심의 제조업 분야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었다.

다른 산업에 비해 노동력의 투입이 많았기에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끝까지 움켜쥐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 위에 핸드폰 등 정보통신 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대한민국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딱히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네.’

대한민국에도 머리 좋은 사람은 정말이지 많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해외의 전문가들이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말을 할 때 그 위기를 한국민들은 극복해 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놔두었어도 몇 년 안에 극복해 내고 한국은 웰빙이 국민들의 최대 화두가 될 정도로 회복이 된다.

다만 모든 부가 상위층에 몰리면서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가 되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강민이 할 일은 그 극심한 변화를 적절하게 제어하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위원회에 넘겨.”

“예! 알겠습니다.”

전 세계에서 머리 좋은 이들을 뽑아서 만든 경제 자문 위원회에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연구하고 적용하라는 마지막 지시를 내리고 난 뒤에 강민은 그제야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간간이 그가 직접 나서야 할 때가 있겠지만 전처럼 모든 것을 다 움켜쥐고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 챙기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경제가 과도하게 컸다.

강민으로서는 자신의 한계를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었으니 나머지 세부 사항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자! 이제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강민은 피드백을 해야 할 시간이라며 관리를 그나마 잘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꽤나 때가 탄 스마트폰을 꺼내었다.

벌써 20여년이 다 되어 가다 보니 스마트폰은 무척이나 오래된 골동품처럼 빛바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만일 그날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강민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자신의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8부 능선은 넘었다는 느낌이 드는 강민이었다.

과거의 물건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아직은 강민의 손에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의 성능을 대량 생산할 수 없었다.

연구실에서 비슷한 성능으로 제작은 가능했기에 강민의 책상 위에는 비록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구현이 되지 않았지만 하드웨어적으로는 엇비슷한 물건이 올려 있었다.

당연히 그 스마트폰으로 미래와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통화는 가능했지만 미래의 누군가가 아니라 현재의 누군가와의 통화만을 할 수 있었고 인터넷도 지금 현재의 인터넷 페이지만이 보였다.

대체 어떻게 미래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인지 지금도 궁금해서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미래의 스마트폰을 연구실로 가지고 가 전부 분해해 조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거위의 배를 가를 순 없지. 암.”

만일 잘못된다면 강민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힘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 강민은 그 호기심을 꾹꾹 눌러야만 했다.

하여튼 강민은 연락처에 저장해 놓은 전화번호를 눌러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1998년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걸린 전화는 2033년의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으로 전화가 걸렸다.

―아이구! 동생! 잘 지냈어?

“하하하! 예! 동규 형님!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 건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강민은 35년 전의 사람에게 동생이라고 부르는 목소리 굵직한 남자에 웃음을 지었다.

지금쯤 초등학생이나 되었을 나이였지만 35년 뒤에는 지금의 강민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강민은 웃음을 지으며 형님이라 불러 주고 있었다.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이해를 할 수도 없을 것이고 딱히 설명을 해 줄 수도 없었다.

미래의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간간이 기웃거리며 능청스럽게 활동을 하다 보니 친목질 아닌 친목질을 하다 어찌어찌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물론 강민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에게 과거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 주겠다는 것으로 해서 활동을 한 지도 제법 오래되어 갔다.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 것인지는 강민도 알 수 없었지만 가끔씩 훈훈함에 강민의 남모를 취미 생활이 되었다.

하여튼 이 미국에 사는 중년의 남자는 강민을 2033년의 서울 어딘가에 사는 얼굴 모르는 동생으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그 거리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도 알지 못했고 아는 것이라고는 서로의 이름뿐이었다.

아니 강민은 한 번 1998년 한동규라는 이 남자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멀찍이 얼굴을 보고서는 피식 미소를 지어 준 적이 있기는 했다.

‘네가 미래에 나하고 형님 동생 한다. 꼬마야.’

그렇게 인터넷으로는 강민 자신의 소식을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미래의 타인의 목소리로 강민 자신에 대한 희미한 정보들을 얻어 들을 수 있었다.

“형님 요즘 미국은 어떻습니까?”

―야! 말도 말아라! 말도 마! 여기도 살기 힘들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그놈의 아이플 때문에 엉망이다.

“아이플?”

강민은 그 전까지는 듣지 못했던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런 말을 듣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한동규로부터 한숨 소리와 함께 아이플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듣게 된 것이었다.

“아이구! 그럼요! 저희도 죽겠습니다. 그런데 뭐 특별한 거 있습니까?”

강민은 자신도 죽겠다는 말을 하며 은근히 아이플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한동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놀라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의 갤럭시사가 아이플한테 무너지고 난 뒤에 아주 그냥 엉망이 되어 버렸어! 하긴 내가 한국 떠난 이유가 그거긴 하지만 너도 어서 기술이라도 배워서 미국으로 넘어와라. 내가 영주권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강민은 진심이 담겨 있는 한동규의 한숨 소리에 두 눈빛이 싸늘하게 변해 갔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