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황금의 어스듐 3화

2018-06-2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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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가?”

“친위대! 친위대에 들어가고 싶어!”

단순하리만치 즉각 반응하며 티노는 두 눈을 과하게 반짝였다. 아이들에겐 공감을, 어른들에겐 비웃음을, 할아버지한테는 호통을 사는 티노의 야망이었다.

“넌 스플래쉬 아일의 노블리…… 사람이지?”

“응.”

“그곳 노블…… 사람들은 전쟁이나 싸움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뭐, 그렇지.”

티노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딱히 전쟁이나 싸움이 좋은 건 아니야. 친위대원이 되고 싶은 거지.”

“친위대에 들어가면 전쟁은 물론 정치 싸움에도 휘말릴 거다. 무기 제작 쪽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건가? 정말 하기 싫다면 강제로 시켜도 안 하면 그만이었을 거다. 소질이 있다 해도 열정이 없다면 장인씩이나 되는 자가 자신의 뒤를 이으라고 강요할 리도 없을 텐데?”

“그야 재미는 있어. 만드는 것도, 고치는 것도, 발명하는 것도. 하지만 할아버지처럼 평생을 걸고 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야. 난 친위대원이 되고 싶다고.”

즉, 흥미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램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던 것이다. 티노에게 기계를 만지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취미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금부터 무예를 배우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반대만 해. 빌네 아저씨가 가르쳐 준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허락을 안 해서 못 배워. 쳇! 이렇게 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4년?”

“15살이 되어서 기초 군사 훈련을 통과하면 성인이잖아? 그러면 할아버지 허락이 없어도 되니까.”

티노는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는 남자가 신기하면서도 좋았다. 그에게는 철없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관대한’ 어른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딴에는 호의를 베푼답시고 제안했다.

“그런 이유로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는 건 못 하겠지만 같이 연구하는 건 할 수 있어. 흥미롭기도 하고.”

“…….”

남자는 맹랑한 티노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곧 고개를 끄떡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진 계속 장인의 아래서 수업을 할 테니 지금보다 수준이 높아질 테지. 괜찮군. 중립지역에서 노블리언을 죽이면 여러 모로 귀찮아지니까, 차라리 잘됐어.”

“대체 뭐라고 말하는 거야? 나랑 있을 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하라고.”

티노는 투덜거리며 기계 팔을 다시 뜯어보기 시작했다.

“좋아.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남자의 말을 자른 티노는 이어서 아, 하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검은 윤곽만 보이는 그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티노야.”

“……아르카다.”

아르카는 기계 팔을 다시 묶어서 한쪽 어깨에 걸쳤다. 외갑의 묵직함을 보아 무게가 상당할 텐데도 그는 티노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무게감 없이 움직였다.

“우선 돌아가라. 이곳에 왔다는 것이 들키지 않아야 할 테니.”

“알았어.”

폭탄을 몇 개나 잃어버렸으니 램에게 들키지 않을 순 없겠지만 지금 돌아가면 평소처럼 주변을 돌아다니다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 잠깐만!”

“……?”

“할 일이 있어.”

티노는 그 충격에도 망가지지 않은 튼튼한 사진기를 들며 씩 웃었다. ‘오늘의 행선지’가 듀오 루나라는 것만 들키지 않으면 되니까 이 사진은 나중에 빌에게 보여 줘야지. 다른 아이가 주목받는 걸 못 견디는 빌이 사진에 대해 말하고 다니는 일은 없을 테니까. 벌써부터 빌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려진다. 쌤통이다.

참고로, 딴에는 호의로 베푼 제안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을 티노가 알게 된 것은 그가 아르카라는 괴짜 플로레스라에 대해 아주 조금 더 알게 된 후였다.

제2장
레나센시아의 촌뜨기 소년


수면 위에 약간 뜬 채로 매끄럽게 달리던 엑시아 한 대가 가볍게 부상하여 육지 위로 올랐다. 그대로 속도만 줄인 채 육지를 달린다.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섬이지만 그리 울창하지는 않아서 늘씬한 엑시아 한 대가 이동하는 건 문제없었다.

때때로 땅에 묻혀 비스듬한 끄트머리만 보이는 건축물이 보였다. 마모되고 부서지고 무너져 이제는 녹슨 철근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매달려 있는 모양새였지만 과거에 그것이 건물이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간혹 원형 대부분을 간직한 건축물도 있긴 했다.

어느 쪽이든 가까이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잘못 건드리면 건물이 무너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휩쓸려 아래로 떨어지면 낭패다. 겉에 드러난 것과는 달리 건축물들은 안이 깊었고, 내부에 몬스터가 둥지를 튼 경우도 적지 않았다.

황량한 자연만이 존재하는 곳을 거침없이 달리던 엑시아가 멈춘 것은 반으로 꺾인 나무 앞에서였다. 강한 힘에 의해 부러진 것이 분명한 나무가 옆에도, 그 옆에도 있었다. 그 외에도 주변의 풀이 엉망으로 뭉개져 있었고 곳곳에 핏자국이 있었다. 몬스터끼리 싸운 흔적이 분명했다. 핏자국이 굳어져 있는 정도를 보아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몸을 피해야 할 정도로 최근도 아니다.

엑시아를 탄 체구 작은 남자의 입가가 삐쭉 올라갔다. 그리곤 끼고 있던 두툼한 고글의 옆면을 조작하고 핏자국의 흔적을 따라 점차적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망원경 기능이 있는 고글이 알아서 초점을 맞춰 주변을 가깝고 선명하게 보여 줬다. 목표물을 찾는 건 금방이었다. 그 주변과 좀 더 먼 곳까지 살펴 몬스터나 무너질 만한 건축물 따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고글을 원래대로 하고 그쪽으로 갔다.

커다란 몬스터가 쓰러져 있었다. 원숭이를 닮은 검은 털의 몬스터인데, 살점 부분은 거의 뜯겨 나갔고 머리와 먹을 수 없는 기계 부분만 남아 있었다. 몸통에 박혀 있는 기계는 먹어 치우는 도중에 훼손됐는지 망가져 있었지만 팔 쪽은 꽤 깔끔한 상태였다. 제대로 전투를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한 모양이다. 남자는 언제든 자리를 뜰 수 있도록 시동을 켜둔 채로 내려서 사체 옆으로 갔다.

“오! 이거 쓸 만하겠는데!”

유쾌하게 말하며 고글을 이마 위에 올린 그는 이제 겨우 10대 중반을 넘었을 법한 노블리언 소년이었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는 머리는 짙은 빨강이었고, 피부는 햇빛에 그을려 약간 갈색이었다. 밝은 초록색 눈동자는 장난기와 생동감이 넘쳐흘렀고, 입가는 유쾌한 모양새로 삐딱하게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 사체를 뜯어보는 눈빛은 꼼꼼했고, 가슴 포켓에서 공구들을 꺼내는 모습은 능숙했다. 쓸 수 없어진 몸통을 버리고 기계 팔 부분만 깔끔하게 떼어 내는 솜씨도 제법이었다.

이어서 소년은 거의 자기 몸통만 한 기계 팔의 양 끝과 중앙을 끈으로 묶어 등에 멘 뒤 앞에서 다시 매듭지어 단단히 고정했다. 엑시아에는 짐을 놓아 둘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기계 팔의 무게는 상당했지만 소년의 얼굴엔 힘겨워하는 구석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다시 엑시아에 올라 출발하는 모습이 전보다 더 흥겨워 보였다.

소년의 이름은 티노. 그는 지금 1년 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노블리언도 플로레스라도 거의 찾지 않는 섬, 듀오 류나는 황폐한 자연과 어우러져 참으로 한적한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이곳은 특히나 한적한 곳에 속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과거 문명의 건물들 덕이다. 거기다 이미 무너진 건물의 철근에 미세한 먼지나 모래, 잡초, 이끼 따위가 뒤덮여 만들어진 천연의 함정도 제법 많은 편이다.

5년 전 티노가 떨어졌던 곳도 바로 그런 천연의 함정 중 하나였다. 마을 부근의 것들은 오래 전에 막아 두었기 때문에 세상에 그런 위험이 존재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티노가 엑시아의 속도를 늦춘 것은 여태껏 그가 주의하며 피해가던 과거 문명의 건물 앞에서였다. 잡초와 모래 따위가 뒤엉켜 있지만 일 층 정도가 밖으로 나와 있어 건물이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곳은 굳이 노련하지 않아도 눈만 제대로 박혀 있으면 피할 수 있는 건물이었다.

이곳에 가까이 오면서부터 그래 왔지만 다시 한 번 주위를 신중하게 둘러본 티노는 엑시아를 탄 채로 천천히 들어갔다. 적어도 이 아래로 이 층 정도는 잘못 건드리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돌출된 건물의 반은 함몰되어 있지만 건물 자체가 커서 안은 꽤 깊고 넓었다. 있었다는 것만 알 수 있는 문과 무너지기 직전인 벽 사이를 용케 비집고 중앙으로 들어가자 건물 내부를 크게 관통한 공간이 나타났다. 땅에 묻혀서 볼 수는 없지만, 내부만 보면 이 건물은 반쯤 쪼개다 만 장작같이 파괴되어 있었다. 티노는 그 쪼개진 틈새로 내려갔다.

틈새는 위층의 바닥이 깨져서 쌓인 돌과 휩쓸려 들어온 모래 따위로 채워져서 경사가 급한 계곡과 비슷했다. 쭉 내려가는 동안 틈새는 점점 좁아져서 엑시아 한 대도 통과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티노는 건물 안쪽으로 방향을 틀어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모래와 먼지가 쌓인 무빙 워커를 통해 이 층을 더 내려간 뒤 마침내 엑시아에서 내렸다. 시동을 끄자 엑시아 아래서 지지대가 나오면서 땅에 착지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계단이었다. 좁은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가다 보면 층층마다 잔뜩 녹이 슨 철문이 나왔다. 개중엔 잠긴 것도 있고 열린 것도 있었다. 티노는 정확히 삼 층을 더 내려와 철문을 열었다. 겉보기엔 녹슬고 지저분한 문이지만 열리는 것은 매끄러웠다.

핏!

문을 열자마자 뭔가가 날아오는 기척에 재빨리 상체를 숙였다. 동시에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았다. 그 뭔가가 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어서 날아오는 다른 뭔가를 단검으로 튕겨 냈다.

잠시 몸을 숙인 채 경계를 풀지 않다가 공격이 그것으로 끝임을 알고 몸을 폈다. 공격자가 누군지 뻔하기 때문에 그쪽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옆을 슬쩍 보자 딱 티노의 얼굴 높이에 박혀 있는 단검이 보였다. 티노의 것보다 훨씬 늘씬하고 수려한 단검이었다. 밖만 녹슬었을 뿐 안쪽은 제대로 땜질이 되어 있는 철문에 반쯤 박혀 있는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지만 말이다.

흉기의 정체를 확인한 티노는 긴장감 없이 안쪽을 돌아보며 뚱하게 외쳤다.

“뭐야, 아르카? 1년 만인데 너무하잖아!”

“나한테 배우고도 성인식을 통과하는 데 1년이나 걸린 무능력자를 친절하게 맞아 줄 이유가 없지.”

아르카는 티노 쪽은 보지도 않은 채 작업대에 늘어놓은 기계 부품들을 정성껏 닦고 있었다.

5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아르카는 여전히 잘생긴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내용물은 다친 꼬마를 치료해 주곤 대가랍시고 멋대로 꼬마의 물건을 가져가는 괴짜지만, 개인이 아닌 종족을 중요시하는 플로레스라면서 이런 곳에 틀어박혀 살고 있는 괴짜지만, 어쨌거나 거죽은 멀쩡한 정도로 넘어서 매우 잘났다.

이제는 티노도 아르카가 적대 종족인 플로레스라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플로레스라라는 종족보다 아르카를 먼저 알았기에 그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거기다 듣고 배워서 알게 된 플로레스라라는 종족과 아르카는 램과 요리만큼이나 거리가 멀기도 했다.

“너한테 배운 걸 들통 나지 않게 하느라고 늦어진 거라고. 거기다 시험과제 자체도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었고.”

노블리언의 경우 15살이 되면 의무적으로 훈련소에 들어가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일정 수준이 되면 여러 가지 시험과제를 주는데, 그것을 모두 달성하여 훈련을 마친 자만이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훈련도 시험도 엄격하여 몇 년 동안 통과 못 하는 자도 많고, 때때로 탈주하는 자도 있다. 그것을 1년 만에 마친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잘했다는 말은커녕 만나자마자 타박을 주자 티노는 툴툴거리며 문을 닫고 들어왔다. 문에 박힌 단검을 뽑고, 바닥에 떨어진 단검도 주워서 보복을 겸해 아르카에게 던졌다. 아르카는 보지도 않고 가볍게 잡아채 다른 단검들이 있는 데에 내려놓았다.

“검술에 체술, 다방면의 지식까지 가르쳐 준 스승을 대하는 태도가 참으로 건방지군그래?”

“공짜로 가르쳐 줬냐? 내가 실험할 만한 것들을 대령하고, 네가 멋대로 조립해 댈 때 옆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다 해 주고, 어스듐까지 갖다 바쳐서 가르쳐 준 거잖아!”

“난 공짜는 싫어하거든.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아르카는 피식 웃었다. 싸늘한 그의 인상은 웃어도 별로 온화해지지 않았다.

“아, 그러셔? 모처럼 선물도 가져왔는데……. 내다 버려야겠군.”

“……!”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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