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역사위원회] 20화

2018-09-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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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역사위원회 표지
[데일리게임] 20화
앤지의 비밀(2)

이슬휘는 앤지가 회사와 경찰서를 거쳐 집에 들어갈 때에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살폈다.
집에서 나오면 곧장 아지트에 가서 쉬다가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사령부로 갈 예정이었다.
앤지의 안전도 중요했지만 사령부의 위치를 들키지 않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어쨌든 아지트까지만 가면 보호망이 작동하므로 안심할 수 있었다.
이슬휘는 앤지가 집 밖으로 나오는 걸 보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수상한 움직임은 없다.
생각 같아서는 앤지와 함께 순간 이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재주나 기술은 없었다.
앤지를 태운 차가 출발했다.
이슬휘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출발했다.
차가 아직 복잡한 시내를 달리고 있을 때 이슬휘는 수상한 차량을 몇 대 보았다.
이슬휘는 즉시 앤지의 차에 연락했다.
“지금 수상한 차 두 대가 그 차를 뒤쫓고 있어요. 방향을 틀면서 한 번 체크해 봅시다.”
앤지의 차는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좌회전을 했다.
이슬휘가 주시하고 있던 차들도 급하게 신호를 무시하면서 좌회전을 했다.
앤지의 차가 다시 우회전을 했다.
두 차도 같이 우회전을 하면서 앤지의 차를 따라왔다.
앤지와 함께 있던 요원이 이슬휘에게 연락했다.
“맞습니다. 두 대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럼 저희가 매뉴얼대로 움직일 테니 뒤를 부탁합니다.”
앤지의 차는 갑자기 속력을 높이며 더 복잡한 시내의 도로를 향해 움직였다. 뒤따르던 차들은 앞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뒤를 따라왔다.
한참을 달린 앤지의 차는 뒤차들과 거리가 좀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대형 빌딩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몇 층을 내려가 구석진 곳에 차를 세우고 옆에 세워놓았던 예비 차로 옮겨 탔다.
앤지 일행이 주차장을 나오면서 보니 뒤따르던 차들이 그제야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앤지와 요원들은 가벼운 숨을 몰아쉬며 다시 아지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무사히 따돌렸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슬휘는 앞서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앤지가 탄 차가 자기를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계속 뒤를 주시했지만 더 이상 따라오는 차는 없어보였다.
“성공한 것 같군요. 따라붙은 차는 안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지트로 곧장 가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아지트에서 뵙겠습니다.”
이슬휘는 전화기를 끄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

이슬휘는 앤지의 차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하지만 몇 번의 신호를 거치면서 두 차의 사이는 꽤 멀어져서 앞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지 되었다.
이슬휘는 무리해서 앞차를 따라가려 하지 않았다.
차가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이슬휘는 슬슬 속력을 높여 앞 차를 따라가려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와앙.
그때 갑자기 굉음과 함께 두 대의 차가 이슬휘를 앞질러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 저건……?’
이슬휘는 그 차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내에서 앤지의 차를 뒤쫓던 차들이었다.
이슬휘는 급히 전화기를 들어 앤지의 차와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요원은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슬휘는 앤지에게 전화를 했다. 가슴 뛰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앤지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안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하이톤의 목소리들이 새어나왔다.
“앤지 씨!”
이슬휘가 소리쳤다.
앤지가 웃음기가 묻어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슬휘 씨. 지금 우리가…….
느긋한 앤지와 달리 이슬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앤지 씨! 지금 차 두 대가 뒤쫓아 가고 있어요. 얼른 피하…….”
쿵!
―아악!
이슬휘가 말을 맺기도 전에 날카로운 충돌음과 함께 앤지의 비명 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나왔다.
“앤지 씨! 앤지 씨!”
이슬휘가 아무리 불러도 더 이상 앤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차가 구르는 듯한 소리만 전화기 안쪽 멀리서 들려왔다.
이슬휘는 있는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이슬휘가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앤지의 차가 온통 찌그러진 채 길 한가운데 비스듬히 서 있었고 요원 하나가 언덕 위를 향해 레이저 총을 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언덕 윗길에 두 대의 차가 서 있고 검은 옷차림의 남자들이 언덕 아래를 향해 역시 레이저 총을 쏘고 있었다.
이슬휘는 길모퉁이 안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낮게 몸을 숙인 채 앤지의 차로 갔다.
가까이 가 보니 다른 두 요원이 기절한 앤지를 차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슬휘를 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보다 앤지 씨는요?”
“기절하셨는데, 외상은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희들이 시간을 끌 테니까 먼저 앤지 씨를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게 해 주십시오.”
지금 상대방의 숫자로 봐서 여기에 이들을 남겨 두고 간다는 건 이들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슬휘가 사령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해 놓기는 했지만 언제쯤 지원 인력이 도착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들과 같이 있기에는 앤지의 상태가 불안했다. 자기가 있는다고 해서 형세가 유리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지원 요청을 해 놨으니 곧 지원군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텨 주십시오.”
이슬휘는 기절한 앤지를 안아 들고 한껏 자세를 낮춘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

“상태가 어떻습니까?”
이슬휘는 초조한 모습으로 복도를 서성이다가 의료진이 문밖으로 나오자 급히 물었다.
“다행히 심각한 내상은 없습니다. 다만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뿐이니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이슬휘의 표정이 급격이 풀어졌다.
이슬휘는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고 양은모의 방으로 갔다.
“앤지 씨는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다고 합니다.”
이슬휘가 방에 들어서며 말하자 양은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저도 막 보고를 받았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요원들은 상태가 좀 어떻습니까?”
은모가 얼굴을 찌푸렸다.
“한 명은 상처가 심해 이송 도중에 사망했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지금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고요.”
“그나마 요원을 다 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나저나 행성연합의 비밀 요원들을 다 죽여 버렸으니 일이 더 커져 버린 게 아닙니까?”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행성연합에서 눈치 채기 전에 얼른 사태를 정리하도록 지금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중입니다.”
은모가 약간의 침묵을 지킨 다음에 다시 말했다.
“이슬휘 씨. 저희 본부에서 앤지 씨에 대해 좀 알아냈습니다.”
이슬휘가 양은모 책상 앞의 의자에 앉으며 그를 쳐다봤다.
“그래요? 앤지 씨에게 무슨 비밀이 있답니까?”
양은모도 다시 의자에 앉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앤지 씨는 행성연합에 있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슬휘가 양은모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양은모도 이슬휘를 마주 쳐다보며 힘주어 말했다.
“앤지 씨가 행성연합을 무너뜨릴 수 있는 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성연합을 무너뜨린다고요?”
“네, 그래서 그들이 기를 쓰고 앤지 씨를 소멸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해가 안 되는군요. 도대체 앤지 씨가 어떻게 그런 키를 가지게 되었는지……. 본인도 전혀 모르고 있는데…….”
“그건 좀 더 알아봐야죠. 현재로서는 그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든지 앤지 씨를 소멸시키려고 할 테니 우리도 좀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요.”
“전에 말씀하셨던 그…… 앤지 씨를 소멸 상태로 보이게 한다던 건 어떻게 됐나요?”
“네, 지금 최종 테스트 중인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네요. 그래도 조만간 성공할 것 같으니 그때까지만 이슬휘 씨가 앤지 씨를 잘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정말 죄송해요. 제 고집 때문에 이렇게까지 되다니…….”
앤지는 요원 한 명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녀는 의무실 침대에서 막 깨어난 참이었다.
침대 맡에는 이슬휘와 양은모가 서 있었다.
이슬휘가 앤지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에요. 위험하다는 말을 듣지 않은 제 잘못이에요. 저는 사실 이렇게 사람이 죽을 정도로 위험한지는 몰랐어요.”
양은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원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 요원은 자기가 헛되이 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앤지 씨를 지키다 그렇게 됐으니까요. 앤지 씨는 저희들 목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앤지가 눈물 젖은 눈으로 양은모를 쳐다봤다.
“도대체 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거죠? 저는 행성연합이니 반행성연합이니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쩝!”
양은모가 입을 꽉 다물었다 떼며 말했다.
“사실 저희도 그건 모릅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저희들이 꼭 알아내겠습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앤지를 바라보던 이슬휘가 양은모의 팔을 잡았다.
“이제 그만 가시지요. 좀 더 쉬시게 해 드립시다.”
“그래요. 그럼 저는 먼저 가 볼 테니 이슬휘 씨는 조금만 더 계시면서 앤지 씨를 돌봐 주시기 바랍니다.”
양은모는 이슬휘와 앤지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이슬휘는 의자를 끌어다가 침대 옆에 놓고 앉았다.
이슬휘는 양손을 뻗어 앤지의 두 손을 그러쥐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고 앞으로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앤지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이슬휘를 쳐다봤다.
“너무 무서워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슬휘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앤지 씨는 아무것도 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제가 앤지 씨를 보호하고 행성연합의 음모도 밝혀낼 게요. 앤지 씨는 어떤 경우에도 저만 믿어 주시면 돼요.”
앤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슬휘는 두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사람만은 지켜 내고 말리라.
이슬휘의 두 눈이 굳은 의지로 빛이 났다.

***

이슬휘는 양은모의 방에서 서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방법밖에 없을까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앤지 씨 사건으로 슬휘 씨에 대한 행성연합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을 게 뻔합니다. 그러니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만이 앤지 씨를 자유롭게 해 드리는 길이기도 하고요.”
양은모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까지 준비는 다 될 것 같습니까?”
“지금 거의 막바지 테스트를 하고 있으니까……. 문제없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슬휘는 무거운 마음으로 은모의 방에서 나왔다.

***

늦은 밤, 사령부의 모든 방에는 불이 꺼지고 희미한 비상등만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복도에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슬휘였다.
이슬휘는 조심스럽지만 익숙하게 복도를 걸어가 한 방 앞에 멈추어 섰다.
이슬휘는 주위를 한 번 살펴본 후 방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T17E, 박형준이 갇혀 있는 방이었다.
이슬휘는 방 안의 불을 켰다.
박형준은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이슬휘는 방 한구석에 놓여 있던 휠체어를 끌어다가 침대 옆에 두고 박형준을 일으켜 휠체어에 앉혔다.
그러는 동안에도 박형준은 깨어나지 않았다.
박형준의 뇌를 조작하기 위해 마취제를 쓴 덕분이었다.
의사가 말했었다.
“아마 내일 아침까지 안 깰 겁니다.”
이슬휘는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동안에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이슬휘는 밖으로 나가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박형준을 태웠다.
그러고는 조용히 사령부 영내를 빠져나갔다.
달도 없는 그믐밤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친 이슬휘의 얼굴에는 굳은 근육과 표정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비의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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