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마스터] 14화

2019-02-18 11:25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적어도 사람의 표정과 반응만큼은 제대로 구현해냈다. 엘리제가 기뻐하는 모습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아! 쿠키로 보답하기로 한게 부끄러울 지경이에요. 이렇게나 좋은 상품을 가져다 주시다니…… 하지만 제가 해 드릴수 있는게 그것뿐이니.”

“됐어요. 약속대로만 해 주면 돼요.”

정말로 미안해 하는 그녀를 향해 내가 답했다. 내가 가져오려던 야생화를 가져와도 그녀가 이렇게 기뻐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블레이드의 말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두 분이 나간 사이에 쿠키를 구워두었어요. 금새가져다 드릴게요.”

엘리제는 이렇게 말하며 가게 안으로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는 종이 같은 것으로 감싼 쿠키 두덩이를 가지고 나왔다. 내 주먹보다 조금 더 큰 것이 한끼 식사 대용으로 충분할 듯 했다.

“여기, 약속했던 쿠키랍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빌려드렸던 꽃 채집용 도구를 돌려주시겠어요? 그리 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라…….”

그녀의 말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종삽과 전지가위를 가방에서 꺼내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 순간 머리속에 퀘스트 완료음으로 생각되는 소리가 울렸다. 창을 열어보니 3번가 시장거리와 사이가 조금 좋아졌다는 메시지도 함께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마흔쯤 먹은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자네들, 그 늑대는 웬건가?”

가죽옷을 걸친 그는 손에 날카로운 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라기보다는 무슨 도구처럼보였다.

“네?”

“늑대 말일세. 보아하니 동쪽숲의 회색늑대 같은데, 자네들이 잡은건가?”

남자가 말을 하는걸로 봐서는 새로운 퀘스트의 시작이거나 추가보상 같은것일 듯 했다.

“아, 네. 저랑 여기 문블레이드가 같이 잡았습니다.”

“오, 그것 참 대단하구만. 자네들, 보기보다는 쎈 모양이야. 초보모험가들이 잡기 쉽지 않은 녀석인데. 아무튼, 자네들, 우리 엘리제에게 해준 일도 있고 하니 한가지 제안을 하겠네. 어디 들어보겠나?”

나는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듯 멍하니 있는 문블레이드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 예.”

문블레이드의 대답까지 듣고 나자 상대편 남자가 다시 말을 잇는다.

“좋네. 나는 이곳 상점거리에서 가죽을 판매하고 있는 사람일세. 보아하니 아직 짐승을 손질하는 방법은 모르고 있는 듯 하구만. 내가 자네들을 대신해 이 늑대를 해체해 주겠네. 큰 손상 없이 사냥을 한 듯 하니 쓸만한 가죽을 꽤 얻을수 있을걸세. 그리고 원한다면 뼈나 고기, 부산물들도 동료들에게 부탁해 정리해 주도록 하지. 어떤가?”

듣던중 반가운 소리다. 언제까지나 이 늑대 시체를 질질 끌고 다닐수는 없는 일이었다. 돈을 들여서라도 ‘재료’로 가공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공짜로 해주겠단다.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하루만 기달려 주게나. 아니면, 원한다면 내 이 늑대를 자네들에게서 구입하도록 하지. 물론 돈은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급해 주겠네.”

이쪽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얼마나 갑니까?”

“음? 어디보자…… 가죽 외의 것은 잘 모르겠는데, 이 정도 크기의 늑대라면 내 가죽값으로 1로스를 쳐주지.”

아까 꽤 쓸만해 보였던 도끼 하나가 1로스 남짓한 가격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리 작은 돈은 아닌 듯 했다.

“고기나 뼈는 거의 가치가 없으니 나머지는 크게 기대하지 말게나.”

모르긴 몰라도 1로스 정도면 하루정도는 헐벗고 굶주리는걸 피할수 있을 듯 했다.

“어쩔까?”

문블레이드에게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다. 근데 어차피 지금 당장 돈은 필요 없잖아.”

“그야…… 하긴 잠이야 신전에서 자면 되고. 거기서 무료로 밥도 준다고 하니. 게다가 이렇게 쿠키도 있고.”

문블레이드의 말을 듣고보니 오히려 고민이 늘었다.

“게다가 이거 나중에 옷같은걸로 만들 수 있는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이 옷은 좀 그렇다.”

문블레이드가 원피스의 허리부분을 당겨 늘렸다가 놓았다.

그녀의 말에 가죽상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돈이 조금 들겠지만 옷으로 만들 수도 있을걸세. 늑대의 가죽이라면 자네들이 입은 린넨 옷보다는 방어력이 뛰어날게야. 하지만 한 마리의 늑대만으로는 옷 한벌을 만들기에 부족할 것이네.”

“늑대야 또 잡으면 되잖아.”

문블레이드가 내 옆구리를 찔러 말한다. 하긴 지금처럼 멍하니 있는 것보다 늑대 가죽으로 옷이라도 한벌 맞추는게 더 나을 듯 싶었다.

“저랑 문블레이드랑 옷을 만들려면 늑대가 몇마리나 필요할 것 같습니까?”

내 물음에 가죽상인은 우리 두 사람의 몸을 훑어보았다.

“글쎄, 어느어느 부분의 옷을 만들 생각인가?”

“네? 아, 그야 제가 입을 웃옷이랑 바지, 그리고 문블레이드가 입을…….”

“치마랑 웃옷이요.”

“치마냐?”

“그야 당연하지. 이쁘잖아. 미니스커트로 해주세요. 밑단은 모피로 처리해주고요.”

이놈 중증이다. 게임에만 들어오면 캐릭터를 이쁘게 치장하는 변태들이 있다더니…… 벌써 입을 옷의 디자인까지 정하는거냐?

“알겠네. 대충 뭘 원하는지 알겠구만. 아참 신발은 어떻게 할 셈인가?”

“네? 아, 신발도 있어야겠네요.”

“그럼 적어도 늑대 네 마리는 필요할 것 같네. 여기 한 마리 있으니 세 마리만 더 잡아오게. 그럼 내 재료는 충분히 마련해 주겠네. 하지만 나도 먹고 살기는 해야 하니, 가죽 가공비를 약간 받겠네. 자네들 돈은 있나?”

뭐야, 갑자기 말을 바꾸네. 하긴 한 마리도 아니고 네 마리나 되는 늑대를 가공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테니…….

“돈 없어요.”

“아, 그런가? 그럼 어쩐다…… 아, 이렇게 하지. 늑대를 네 마리 잡아오게나. 반마리분을 가공비로 받고, 나머지 반마리 분은 내가 50롬을 지급해 주겠네.”

나쁘지 않은 제안같았다. 늑대를 잡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좋아요. 그렇게 하죠.”

내가 대답을 하는 동시에 퀘스트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3번가의 가죽상인, 이라는 이름의 퀘스트였다.

“그리고 자네 꽤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신전에 한번 가보게나. 그곳의 수녀님이 자네의 상처를 봐 주실것이네. 엘모아 여신께서는 초보 여행자들에게 관대하시네.”

좋은 정보까지 손에 넣었다. 나와 문블레이드는 엘리제와 가죽상인에게 인사를 한후 성의 신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전은 처음 게임을 시작한 분수광장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3번가 상점에서는 북쪽으로 네블럭쯤 떨어진 장소였다.

그곳에는 이제 막 시작한 듯 보이는 게이머들이 몇 명 더 있었다. 무슨 구분할수 있는 부분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하나같이 미남 미녀에 입고있는 옷도 색깔만 조금 다를 뿐 비슷했다.

그들중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초보들이 둘러싸고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가죽제 갑옷을 입고, 조잡하나마 무기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남들보다 좀 더 일찍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인 듯 했다. 벌써 샹그릴라 클로즈 베타 서버가 열린지도 여섯시간이 흘렀으니까.

대화를 들어보니 확실했다.

“와, 님 진짜 대단하시다. 벌써 3렙이에요?”

“퀘스트 어느거 하는게 좋아요? 아까 3번가 상점거리 갔는데 보상이 다 별로라서 퀘 안받았어요.”

사람들의 물음에 가죽옷차림의 남자가 답한다.

“아 3번가퀘는 하지 말아요. 쿠키같은거 어차피 신전에서 공짜로 나눠주니까요. 차라리 상점가 건너편 대형마트 퀘가 나아요. 현실시간 한시간, 여기 시간으로 이틀이면 5로스는 벌 수 있어요.”

“와, 정말요?”

“저 지금 입고있는 장비 다 합쳐서 20로스에요. 서너시간만 노가다 뛰면 장비 금방 맞춰요.”

그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문블레이드가 내게 눈짓을 한다.

“우리도 그럴걸 그랬나?”

“됐어. 어차피 즐기자고 하는 게임인데. 왜 그러고 싶냐?”

내 물음에 문블레이드가 고개를 젓는다.

“남자가 한입으로 두말하기도 그렇다. 그냥 하던거 하자. 어차피 한달후면 장비랑 전부 반납해야 한다며? 레벨도 1로 돌아가고.”

“맞아. 클로즈 베타 특전이라고 해봤자, 남들보다 먼저 얼굴이랑 이름 정하는 것 밖에 없어. 팩션도 남는다고 했던가?”

“팩션이 뭐야?”

“친밀도 말이야. 아까 3번가 상점거리와 사이가 좋아졌다 라는 메시지 있었지?”

“아아, 그거 말이야?”

나는 게이머 무리들을 뒤로한채 신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스의 신전같기도 한 엘모아 신전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정체모를 온기에 몸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전은 그리스 신전이랑 비슷한 모양이었다. 정면으로 처음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 보았던 여신의 조각상이 서있고, 기도를 위한 공간인 듯 보이는 너른 강당이 가 앞을 차지했다.

우리가 신전에 들어서자마자 백색의 통치마를 입은 아줌마가 다가왔다. 머리까지 흰 천을 뒤집어 써 보는것만으로도 신전의 관계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모아 여신의 축복을 받은 두분 모험자들이여, 그분의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온화한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여 답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엘모아 님의 신전은 초보 모험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대충 어떠한 것을 제공해 주는지는 이미 알고있었지만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물었다.

“이곳에서 어떤 것을 얻을수 있나요?”

나의 물음에 수녀가 공손히 답했다.

“밤에는 쉴 곳을 제공하고, 낮에는 먹을 것을 나누어 드리고 있습니다. 상처를 치료해주며 모험을 하는 도중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다면 사원의 기사들이 이곳으로 모셔와 여러분들을 보호해 드린답니다.”

죽을 경우 이곳으로 강제소환을 당하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답한 후 말했다.

“지금은 상처를 치료하고 싶습니다. 먹을것도 조금 나누어 주셨으면 하고요.”

“알겠습니다. 상처는 저곳의 성수를 상처난 부위에 바르면 됩니다. 따라 오십시오.”

수녀는 우리 두 사람을 안내하며 신전의 동쪽 벽쪽으로 향했다. 물병을 든 여인내가 맑은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물론 조각상이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생수병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유리로 만든 병인 듯 했는데 앞에는 30롬 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엘모아 신전의 성수는 탁월한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수녀는 생수가 고인 대야 모양의 조각상에서 생수를 한국자 퍼올렸다. 그리고는 내 상처에 생수를 한국자 끼언져 주었다. 물파스를 바른 듯 시원한 따끔하면서도 시원한 감각이 상처에 퍼지고,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 생수 파나보네요?”

옆에서 생수병을 구경하던 문블레이드가 묻는다.

“네? 그런 불경스러운…… 어찌 신이 내린 축복을 팔 수 있겠습니까? 저건 어디까지나 병의 가격입니다.”

“그럼 다른 병을 가져오면 공짜로 가져갈수 있어요?”

문블레이드가 다시 물었고 수녀는 고개를 저었다.

“정화하지 않은 그릇에 담는다면 성수의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결국 성수를 판다는 얘기잖아. 하여간 현실이나 여기나 신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는 놈들은 꼭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모험을 하다 상처를 입을 경우 신전에 들려 치료를 하시면 됩니다. 엘모아 신의 축복을 받은 분들게 신전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가증스러운 수녀의 말을 뒤로하며 나는 능력치 창을 열어보았다. 체력이 꽤 빠른속도로 차올라 어느덧 끝까지 올라 있었다. 이 정도면 늑대를 잡는것도 무리가 아닐 듯 했다.

문블레이드가 물었다.

“생수 한병 사갈까?”

“우리 돈 없다.”

“아 맞다.”

“아무튼 늑대나 잡으러 가자. 늑대가죽옷이라 해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오케이.”

이상혁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