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STAR] WE '스피릿' 이다윤 "은퇴는 반드시 한국에서"

2015-09-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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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 있어 '선수 대이동'의 시기였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해외팀들의 러브콜을 받아 북미와 유럽, 그리고 중국 등지로 떠나게 됐죠.

아직도 많은 팬들이 그리워하는 당시의 '삼성 왕조' 화이트와 블루팀도 롤챔스와 롤드컵 우승의 대업을 달성한 뒤 선수 전원이 중국 무대로 진출했습니다.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난 것이죠.

삼성 블루에서 정글러로 활약하던 '스피릿' 이다윤 선수는 중국의 명문팀 월드 엘리트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비록 중국 LOL 프로리그(LPL)에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2014 데마시아컵 시즌2와 2015 IET, 2015 IEM 시즌9 월드 챔피언십에서 연달아 준우승을 차지하며 단기 토너먼트에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1년 가까이 중국에서 지내며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이다윤 선수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현지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웃을 때 눈이 보이지 않는 매력적인 눈웃음이 중국에서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데일리e스포츠는 중국에서의 두 번째 시즌을 마친 뒤 한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다윤 선수를 만나 데뷔 때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은퇴 후 계획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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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머 시즌이 끝났죠. 한국에 와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한국에 온지 3주 정도 됐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이나 아는 형들도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쉬는 동안 실력이 떨어지면 안되니까 집에서 게임도 많이 하고 있어요. 다른 게임은 지장 있을까봐 안하는 편이에요.

먼저 중국으로 넘어갈 때 얘기를 해볼게요. 처음 중국에서 제의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사실 중국보다 미국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어요. 개인적으로 중국은 분위기도 그렇고 소문이 안 좋아서 크게 생각은 안했었는데, '인섹' 최인석 선수나 '제로' 윤경섭 선수가 중국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그렇게 나쁘진 않겠구나 생각했죠. 제 가치를 알아주는 곳이니 모험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들뜬 마음으로 중국으로 향했어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느낌이 강했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팀의 조건이 더 좋았겠죠?
영어도 좋은 자원이지만 중국이 발전하는 시장이니 미래를 생각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인구가 많아서 인기도 더 많고 관심도 더 많을 것 같았고요. 그리고 한국하고 가까워서 비행기 타면 두 시간이면 왔다 갔다 할 수 있잖아요. 부산보다 더 빠르게. 미국에 가면 집에 자주 못 올 테니까 중국을 택한 거죠. 물론 조건도 더 좋았고요.

월드 엘리트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e스포츠 팀 중 하나이고 그만큼 명문인 구단이죠. 이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제가 전 삼성 선수들 중 가장 늦게 계약을 했어요. 미국으로 가려다 월드 엘리트의 제안이 들어와서 깊게 생각하다 중국행을 택했어요. 사실 월드 엘리트를 선택한 이유는 말씀하신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했어요. 오래된 팀인 만큼 팬이 정말 많아요. 팬이 있어야 할 맛도 나고 게임하는 보람도 느끼기 때문에 월드 엘리트를 선택했죠.

중국에 진출한 한국선수들과 자주 만나는 편인가요?
꽤 자주 본다고 생각은 하는데, 전 삼성 선수들과는 의외로 그렇게 많이 안 만나는 편이에요. '루키' 송의진 선수나 '마파' 원상연 코치와 자주 만나요. 전 삼성 선수들은 하도 친해서요.(웃음) 가끔 술도 마시긴 해요. 경기장에서 보는 걸로도 충분해요. 저는 중국에 있을 땐 외출을 잘 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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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 고생이 많은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요?
한국에 있을 땐 스트레스 받을 때 근처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카페라도 가서 커피만 마셔도 어느 정도 해소됐거든요. 아니면 형들과 술 마시며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던 지…. 중국에선 그런 방법이 아예 없어요. 밖에 나가더라도 택시타고 한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한동안 힘들었는데 요즘은 많이 괜찮아졌죠. 처음엔 중국어가 안됐는데 요즘은 택시타고 원하는 곳에 가고 음식 주문할 정도는 돼요. 택시타고 관광지나 카페에 가서 사람 구경하고, 그렇게 지내요. 스트레스를 거의 혼자서 푸는 편이에요.

중국에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할 수가 없잖아요? 팬들과 소통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하죠?
중국팬들과는 중국 내 SNS인 웨이보를 통해서 소통하고, 가끔 페이스북이 하고 싶을 땐 VPN을 통해서 우회접속해요. SNS를 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 팬들 사이에서 저에 대한 생각도 많이 없어졌을 것 같아요.

중국에 진출한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주로 댄디, 마타 등이 주로 언급되는 것 같아요. 본인은 언급이 잘 안되는데 질투는 생기지 않나요.
질투 물론 생기죠. 요즘은 어떻게 보면 그게 당연한 것 같아요. 최고의 기대를 받던 선수들이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거고, 중국 내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줘서 조명 받는 것이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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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시절엔 본인도 함께 이룬 것이 많잖아요?
제일 중요한건 롤드컵 우승이니까 임팩트에서 차이가 큰 것 같네요. 하지만 저도 중국 팬들에게 인기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기 때문에.(웃음) 저도 중국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면 스포트라이트 받을 테니 큰 걱정은 안하고 있어요.

중국에서 따로 얻은 별명이 있나요.
별명은 너무 많은데, 그 중에 가장 많이 불리는 건 '이다정'이에요. 제 이름 마지막 글자를 정(情)으로 바꿔서 부르는데 중국어로 발음하면 '칭'이거든요. 제가 정이 많다고,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생겼어요. 제가 경기장에 가면 항상 반가워서 전 동료들이나 동생들 찾아가서 안아주고 대화를 나누는 편인데, 그런 모습들을 사진으로 많이 찍혀서 그런 별명이 붙게 됐는데 좋은 별명인 것 같아요.

'이다윤'이라는 이름도 흔치는 않아요. 무슨 뜻을 담고 있나요?
많을 다(多)에 다스릴 윤(尹)을 써서 많은 사람을 다스리라고 어머니께서 지어주셨어요. 큰 포부를 가지라고요. 그래서 중국으로 가게 된 것 아닌가 싶네요.(웃음)

아직도 삼성 블루와 화이트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해체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론 제가 삼성 소속이던 시절에 롤챔스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 때가 대중들이 LOL을 가장 많이 알아주던 시기였죠. 당시 메타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재밌었는데 그 당시 메타를 삼성이 잘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해요. SK텔레콤 T1도 13년도에 정말 잘해서 항상 기억해주시고, 올해도 잘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얼마 전 인터넷 방송을 보니 자비를 들여서라도 롤드컵 객원해설로 참여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평소에도 해설 욕심이 있나요?
예전부터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프로게이머 이후에도 팬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제가 말이 많고 누구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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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은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앞으로 얼마나 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계획인가요?
길어야 2년? 그렇게 길진 않을 것 같아요. 손목이나 허리에 건강상 문제가 생겨서 중국에서 치료 받고 있거든요. 절대 나아지진 않아요. 그렇다고 연습을 쉴 수도 없고 해서…. 오래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오래 할 수 있진 않을 것 같아요. 만약 해설 쪽으로 기회가 없다면 공부가 하고 싶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자퇴해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기도 하고.(웃음) 유학 가서 영어도 배우고 싶어요.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는데, 수입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대부분 저금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관리해요. 어렸을 때 집이 잘 살아도 봤고, 못 살아도 봤고, 연습 생 때 월급 못 받은 경험도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해서 돈이 무서운 걸 일찌감치 깨달았죠. 조심스럽게 살고 있어요. 프로게이머 자체가 수명이 길지 않아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죠. '댕겨 번다'는 느낌이 강해요. 다른 사람들 1~20년 벌 것 한 번에 버는 것이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하죠. 주위에 아는 형들이나 어른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허투루 쓰지 말고 모을 수 있을 때 잘 모으라는 거죠. 그런 현실적인 조언을이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수입이 커지니 집안이나 주변의 대우가 달라졌겠는데요?
평소에도 얼마를 벌던 응원해주시던 부모님이세요. 물론 제가 많이 버는 만큼 편하시겠지만 겉으로 티를 잘 안내세요. 제 주변 사람들도 그런 것에 대우 달라질 사람들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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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과거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떻게 LOL을 하게 됐어요?
어릴 때 스타크래프트1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게이머를 준비했거든요. 하지만 그 때는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친구가 LOL을 해보라고 했는데 당시엔 싫다고 안했어요. 전 던전앤파이터 같은 걸 좋아했거든요. 고1 때 친구 권유로 다시 하게 됐고, 배치게임을 했는데 다 이겨서 골드로 가게 됐죠. 그 때부터 흥미가 느껴져서 열심히 했어요. 제 티어가 올라가는 걸 보니 게임의 재미를 알게 된 거죠. 공부도 제쳐가며 하게 됐어요.

그럼 LOL을 하기 전부터 프로게이머가 꿈이었던 거네요?
10살 때부터 장래희망이 프로게이머였어요. 8살 때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어요. 정말 안 챙겨본 경기가 없을 정도로 좋아했죠.

그럼 당시 좋아하던 선수는 누구였나요?
제가 했던 종족이 테란이라 이윤열 선수를 정말 좋아했어요. 하지만 정작 들어가고 싶었던 팀은 화승 오즈였죠. 당시 이제동 선수가 정말 잘해서 '저 팀에 가면 저그전을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할 수가 없었죠. 13살 때 최연소 프로게이머를 꿈꾸면서 데뷔만 하면 최연소 타이틀을 얻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꿈은 못 이뤘죠. 하지만 그 때 반대하셨기 때문에 제가 두 번째로 프로게이머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기회를 주셨죠. LOL 프로게이머 한다고 했을 땐 '네가 선택한 것이니 후회 말고 잘 할 자신 있으면 하라'고 하셨어요.

MVP 팀엔 어떻게 들어가게 됐죠?
커뮤니티에 공개테스트 글이 올라와서 무심코 넣어 봤어요. '과연 내가 될까?' 하는 마음이었죠. 지원 사유에 '제가 될 것 아니까 뽑으세요'라고 썼어요.(웃음) 그런데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1차에 합격했다고 문자메시지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숙소 생활 가능한 사람은 2차 테스트 있으니 연락 달라고요. 학교 때문에 가능할까 고민이 들었죠. 부모님께 합격하면 학교생활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하고 싶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어요. 2차 테스트에서 합격해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스크림도 없고 학교생활에 큰 지장은 없더라고요. 그렇게 지내다 13년 8월쯤 주전으로 뛸 기회가 생겼어요. 가능성이 생긴 마당에 제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팀에서도 믿고 쓰지 않을까 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숙소에 합류해 매일매일 형들과 같이 지내고 열심히 연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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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인생을 건 도박이었네요.
주전자리 꿰차지 못하고 연습생으로만 남았다면 시간도 버리고 여러 가지로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죠.

MVP가 처음부터 강팀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상승세를 타게 됐잖아요?
제가 처음 MVP에 들어갔을 때 블루팀 분위기는 항상 좋지 않았어요. 롤챔스 16강에서 일찍 떨어지고, NLB도 일찍 떨어지고…. 이 팀에 내 미래를 맡겨도 될까하는 불안감이 생겼죠. 반면 오존팀은 잘했어요. 우승도 하고…. 오존팀과 마음을 잡고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성공에 대한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 때 정말 선수 10명과 코칭스태프가 게임에만 몰두했어요.

MVP에서 삼성으로 갈 때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정말 좋았죠. 드디어 우리를 인정해주는 느낌이었죠. 사실 당시에 오존이 우승해서 블루팀은 원 플러스 원 느낌이 강했어요. 덕을 많이 봤죠. 제가 주전으로 뛰기 전이지만 기분 좋았어요. 한국에서 '삼성'이란 타이틀은 가지기 쉽지 않잖아요.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MVP 때와 삼성에서의 차이가 있었다면요?
환경의 차이죠. MVP에 있을 땐 숙소 안에서 여러 명이 힘들게 생활했었는데, 정말 큰 숙소로 옮기고 밥해주시는 이모님도 빨래, 설거지, 청소를 다 해주시니 편하게 생활했었던 것 같아요. 안정감이 생기고 불안함이 사라졌죠. 여러모로 좋았어요.

삼성과 헤어질 때는 어떤 기분이었어요?
정든 형들과 떨어지는 것, 맞췄던 호흡들이 사라지는 것, 하루 이틀이 아니라 2년 동안 힘들게 쌓아온 것이 없어진 게 아쉬웠어요. 그래도 10명이 모두 중국에 가서 만나고 교류할 수 있어 다행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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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하루아침에 적이 됐네요.
되게 재밌어요.(웃음) 물론 이기는 입장에선 재밌지만 지는 입장에선 좋지만은 않죠. '왜 이렇게 잘해 진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북미나 유럽으로 진출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기회가 된다면 이곳저곳 다 가보고 싶어요. 도전이나 모험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다시 중국 이야기를 해보죠. 팀 동료들과는 잘 지내나요? 한국 선수와 중국 선수 사이가 안 좋은 팀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다른 팀은 나뉘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우린 그런 것 없어요. 새벽에 라면을 끓여먹을 때 중국 선수들과 같이 나눠먹기도 하고, 중국 선수들이 끓여줄 때도 있어요. 서로 잘 챙겨주는 편이에요.

어떤 선수와 가장 친한가요?
고루고루 친한데 그 중에서도 'xiye' 수 한웨이라는 미드 라이너가 나이도 어리고 귀여워서 더 정이 가는 것 같아요. 미드와 정글이 호흡을 맞추다보니 더 챙기게 되는 것 같네요.

중국에 가서 '컬쳐쇼크' 받은 적은 없나요? 아니면 음식 때문에 고생한 적은요?
딱히 그런 건 없었어요. 처음에 이상한 것 많이 먹을 것 같고, TV에서 보니 벌레 구워먹고 하길래 걱정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제가 있는 상하이 지역은 한국과 거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개구리 고기를 치킨보다 좋아한다는 것은 좀 놀랐어요. 숙소 이모님이 개구리 요리를 정말 잘 하세요. 한 중국 선수는 맛있다고 먹다가 앞니가 나간 적도 있어요.(웃음) 개구리 요리는 정말 치킨처럼 생겼어요. 제가 놀랐던 건 토마토와 계란을 섞어서 먹더라고요. 중국에선 보편화된 음식이래요. 저는 맛있는 걸 섞어서 왜 이상하게 만들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먹어요. 먹다보니 왜 먹는지 알겠더라고요. 또 중국음식은 국물이 많지가 않아서 처음엔 고생을 좀 했어요. 적응하는데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만큼 이모님이 신경을 써주셨어요. 향신료도 덜 넣고요. 그래도 기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오이도 기름에 절여 나와서 못 먹겠더라고요. 모든 요리에 기름을 써서 한동안 고생했어요.

현지에서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산책하는 게 전부에요. 거의 못하고 있어요. 따로 시설도 없고…. 한국에선 헬스를 다녔는데 중국에선 택시타고 가야해서 엄두가 안나요. 시간도 없고요. 기름진 것 먹다보니 살만 찌고….

중국에서 지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누구인가요?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 꼽자면 매번 경기장에 오는 여성팬 한 분이 계세요. 제가 처음 갔을 때부터 모든 경기에 다 오셨는데, 하루는 저희가 게임을 졌을 때 울고 계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한국어로 파이팅 하라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런 말 들으니 정말 좋더라고요. 중국에는 '힘내', '고생했어' 같은 부드러운 표현이 별로 없는데 한국말로만 전달될 수 있는 감정을 중국에서 들으니 뭔가 더 와 닿더라고요. 그리고 남성팬들은 성향이 성적 좋은 팀을 응원하게 돼있어서 우리팀 성적 좋을 땐 남성팬이 많았는데, 성적 떨어지고 나선 찾기 힘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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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많이 외로울 것 같아요.
외로움은 많이 안 탄 것 같아요. 방송을 자주하다보니 중국어도 공부되고 심심할 틈이 없어요.

혹시 나중에 한국팀에 올 계획이 있나요?
언제가 됐건 제 프로생활 마지막 시즌은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요. 물론 다른 리그로 가는 것도 좋지만 마지막 시즌만큼은 한국에서 보내야죠.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된 것도 한국 팬들과 한국리그 아니면 못했을 거예요.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팬 조련의 달인이네요.(웃음) 이런 걸 평소에 연구하는 편인가요?
평범하면 못살아 남아요.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팬들이 좋아해주시니 저도 만족해서 다음에 어떻게 할까 생각하기도 하죠.(웃음)

한국팀을 선택할 때 조건이 있다면요?
다 떠나서 롤드컵 우승 가능성만 볼 것 같아요. 팀 케미나 시너지죠. 마지막 시즌을 한국팀에서 롤드컵 우승하고 그만두면 얼마나 멋있겠어요. 박수 칠 때 떠나는 거죠. 그저 바람이에요. 꿈이죠.(웃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정글이란 포지션에서 따라올 자 없다, 이런 것과 '그 때 정말 잘했어'하는 평범한 기억보다 다재다능하고 매력 있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다시는 안 나올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리고 누구보다 팬을 사랑한 선수?(웃음) 선수로서도 좋지만 좋은 사람으로도 기억에 남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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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보면 알아보는 사람 있지 않아요?
제가 원래 살았던 평택이나 송탄에선 소문이 좀 나서 알아볼 때가 있었는데, 인천으로 이사를 오고나선 그런 일이 거의 없네요. 가끔 홍대나 용산에 가면 한두분 정도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임프' 구승빈 형하고 같이 다니면 승빈형만 알아보고 저는 사진 찍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저를 알아봐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국 팬들에게 LPL은 전투적인 리그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기엔 생각 없이 싸우는 걸로 보일 수 있는데,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에선 최대한 안전하고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방식을 취하고 CS와 포탑에서 차이를 내죠. 중국은 성격이 급한 것 같긴 한데 드래곤을 먹기 위해선 상대를 모두 잡아야한다, 포탑 밀려면 싸워야한다 이런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 같아요. 요즘엔 중국 선수들도 '탈수기 운영'을 잘 해요. 그래서 더 무서워진 것 같아요.

많은 대화를 나눴네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중국에 갔어도 잊지 않고 응원해주시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팬들이 많더라고요. '고생 많았고 푹 쉬다 가세요'라고 말씀해주신 분도 계시고요. 그런 따뜻한 말들 정말 감사해요. 제가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고 응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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