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기획] 임바TV 양선일 부사장 "주도권 잃은 한국, 다시 저력 보여주길"

2018-07-0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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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어떤 분야에서나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e스포츠 시장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e스포츠 시장은 세계적으로 그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정체된 분위기다. 미국이나 중국과는 자본의 규모가 다르기도 하지만, 각종 대회들을 제작하고 연출하는데 있어서도 한국이 더 이상 앞선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정체된 한국 e스포츠 시장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한국 e스포츠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정확한 진단을 위해 국내외 e스포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기자에게 있어서는 중국의 e스포츠 전문 미디어 그룹인 임바TV에서 부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양선일씨가 적임자였다. 양선일 부사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글로벌 e스포츠 전문가다.

업계 경력이 15년에 달하는 그는 아이스타존, CJ 미디어, 중앙일보 문화사업, 클라우프, 아주부 등을 거쳤고, e스타즈 서울, WEG, WEM 등 국내외 굵직한 e스포츠 이벤트 및 사업들을 담당해왔다.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게임을 보는 눈도 남다르다. 2005년에는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 팀 프로젝트kr의 창단을 주도했으며, 2008년에는 챔피언십 게이밍 시리즈(CGS)에서 서울 진화 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임바TV 부사장뿐만 아니라 국내 프로게임단 MVP의 사업총괄도 겸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국내외 e스포츠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봤을 그에게 한국 e스포츠 시장의 현주소에 대한 주제로 인터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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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e스포츠,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왔나
양 부사장이 본 한국과 해외 e스포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양 부사장은 가장 큰 차이점으로 한국에서 오프라인 토너먼트가 사장된 것을 꼽았다. 해외에서는 ESL, 드림핵, PGL, 스타래더 등의 대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했지만 한국에서는 방송 위주로만 대회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e스포츠가 방송사 주도로 시작되다보니 정돈된 스튜디오에서 장기적인 리그를 중심적으로 커왔죠. 반면 서양에서는 대규모 랜(LAN)파티나 단기 토너먼트 형태로 e스포츠가 시작돼 방송과 함께 하이브리드로 섞이는 구조로 발전했습니다. 현재 서구와 중국 쪽 e스포츠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토너먼트와 장기 방송 대회 퀄리티가 모두 높아졌습니다. 중국의 제작 퀄리티는 한국을 뛰어 넘은지 오래죠."

"한국은 여전히 단기 토너먼트 인프라가 없고, 시장에서 소화하기 힘들어한다 생각합니다. 모든 대회가 방송 포맷에 맞춰져 있죠. 이제 서양이나 중국은 둘 다 잘하지만, 한국은 하나만 잘하고 있습니다."

양 부사장은 한국 e스포츠 시장이 방송국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WEG나 WCG 같은 대회가 사라진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이제 국내에 남은 단기 토너먼트는 게임사가 마케팅을 위해 유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팬 서비스일 뿐, e스포츠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단기 토너먼트를 '영화'로, 방송 대회를 '드라마'에 비유했다. 해외에서는 e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잘 만들게 됐는데, 한국에서는 '드라마'만 잘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외의 이런 차이가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 종목이 바로 배틀그라운드다. 국내에서는 배틀그라운드 대회가 OGN과 스포티비 게임즈, 아프리카TV에서 돌아가며 열리고 있다. 한 시즌을 치르는데 보통 1개월이 소요되고, 대회별로 시즌이 겹치다보니 산만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반면 PGL, 스타래더 같은 해외 대회에서는 경기가 3~5일에 걸쳐 치러진다. 집중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양 부사장은 "해외 대회의 방식이 화제성이나 선수들의 집중도가 더 높다. 한국에서 현재 진행되는 방식은 하는 입장이나 보는 입장 모두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종목에 따라 각각 단기 대회나 방송 대회에 맞는 포맷들이 있다고 부연했다.

"대회를 만드는 오거나이저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는데, 배틀그라운드는 랜덤성이 크고 순간 집중력이 요구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방송 대회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려면 테니스 월드 투어나 F1처럼 정해진 팀이 1년 내내 장소만 바꿔서 경기하는 방법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억지로 장기 리그로 끌고 가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팀들도 3개 대회를 동시에 참가하니 힘들어하고요. 그러니 한 대회에서 1등을 한 팀이 다른 대회에서는 꼴찌를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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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은 의지와 인내심
기자는 양선일 부사장에게 그간 한국 e스포츠 시장의 발전을 저해한 요소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기성세대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투자 의지'였다. 신규 종목이나 대회가 가시적, 경제적 효과를 내려면 물리적 시간이 최소 2~3년이 필요한데, 의사 결정을 하는 '윗선'에서는 대부분 이 시간을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업계 종사자들은 당장 돈이 안 되면 안합니다. 기업 논리로 보면 맞지만, 저는 의지의 문제라고 봅니다.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물리적 시간과 담금질이 필요합니다. 이를 기다려줄 수 있는 투자 의지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죠."

차세대 먹거리를 직접 키우려하지 않는, 인내심이 부족한 한국 e스포츠 시장에 대한 날선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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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사가 주도하는 e스포츠? "수뇌부 신뢰 있어야 성공"
과거와 현재 e스포츠 시장을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시장 주도권이 방송사나 대회 오거나이저에서 종목사(개발사)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종목사에서 직접 e스포츠 대회를 주최하고 전보다 깊게 관여하면서 방송사들은 점점 주도권을 잃은 모양새가 됐다. 양 부사장은 이 주제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고 말했다.

"종목사가 주도하는 것은 라이엇 게임즈와 블리자드에만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밸브의 경우 시장 자율에 맡겨 오거나이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죠.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CS:GO)나 도타2의 경우 메이저-마이너라는 밸브가 마련한 시스템이 있지만 그만큼 서드 파티 오거나이저들의 가치도 못지않게 커졌죠. 밸런스가 굉장히 잘 맞고 서로의 관계를 영리하게 잘 유지하고 있죠."

"종목사가 주도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시리즈를 만든 라이엇 게임즈처럼 의사결정이나 투자를 잘 할 수 있지만, 온전히 수뇌부의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오버워치 리그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대부분 게임사들이 그 정도의 신뢰를 갖고 e스포츠에 투자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결국 종목사가 e스포츠를 직접 주도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뇌부의 '투자 의지'가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어설프게 e스포츠를 외쳤던 종목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시장에서 도태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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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길"
e스포츠 시장이 커졌다고 하지만 그의 시선에서 한국 시장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 양 부사장은 "메인 스트림 범주에 들어가기까지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고 말했다. 공중파 채널에서 e스포츠 경기가 나오고, 누구나 인정할만한 종목 그리고 문화가 돼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각 조직들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 설정과 세부 전략 수립 등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은 지는 꽤 됐습니다. 처음부터 시장을 봐왔던 입장에서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 가는 게 과연 맞는지, 과감하게 변화를 줘야 할 것인지는 모두가 생각해야할 문제입니다."

양 부사장은 마지막까지 한국 e스포츠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e스포츠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발언들이었다. 물론 희망적인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배틀그라운드가 세계를 강타한 것을 보면 한국도 아직 저력이 있다고 봅니다. 각 방송사들과 종목사들이 잘 협력해 세상을 뒤집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이 단순히 선수들만 뛰어난 나라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퀄리티와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