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사과에도 순서가 있다

2018-07-0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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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오버워치 컨텐더스 시즌2가 개막하는 시점에 오버워치 e스포츠는 다시 터진 대리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메타 벨륨의 컨텐더스 로스터에 '해피' 이정우가 포함되면서부터다. 이정우는 이전에 '베스타'라는 닉네임을 사용했으며, 엘리먼트 미스틱과 블라썸에서 두 차례나 방출당한 이력이 있다. 과거 금전을 대가로 대리 게임을 진행한 것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대리 영입 소식에 커뮤니티가 들썩이자 메타 게이밍은 지난 6월 27일 팀의 공식 트위터를 통해 이정우를 로스터에 등록시킨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당사자의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메타 측의 이 해명 직후 팬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정우가 대리를 한 시점이 프로로 데뷔하기 전이고 벌어들인 돈은 8만 7천 원에 그쳤다는 것이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태도로 보였다.

기자는 로스터 발표 이전부터 이정우가 메타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다른 팀 관계자들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팀에서 두 차례나 방출된 선수를 곧장 로스터에 등록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한국 e스포츠씬에서 대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 나이가 어리다보니 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반성했다면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이정우가 진짜로 반성했는지 의문이다. 그는 이전에 두 차례나 팀에서 방출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프로게이머로서의 길이 영영 막힐 것 같으니 그제야 억지로 사과하는 느낌이 강하다.

게임단의 태도도 잘못됐다. 메타는 이정우가 6개월의 시간 동안 자숙했다고 하지만, 그건 자숙이 아니라 선수로서 기회를 얻지 못해 쉬었을 뿐이다. 자숙이란 사과를 먼저 한 뒤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메타는 상당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정우에게 컨텐더스에서 뛸 기회를 줬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은 자신들도 아는 것 같다. 새로 영입된 선수들은 매번 SNS를 통해 발표하지만 이정우의 영입에 대해선 특별한 발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로스터에 등록된 것을 팬들이 먼저 발견했을 뿐이다.

메타의 이번 선택에 대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오버워치 e스포츠판이 오버워치 리그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컨텐더스에 참가하는 팀들은 수익 활동이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고, 후원사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를 오버워치 리그 팀으로 보내고 이적료를 받는 것이 팀의 거의 유일한 수익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급하게 대리 경력이 있는 선수를 곧장 로스터에 포함시켰어야 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영화 '베테랑'의 대사가 떠오른다. 정말 팀에 필요한 선수였다면 로스터 등록에 앞서 먼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한 뒤 충분한 반성의 시간을 가진 이후에 기회를 줬더라면 어땠을까.

어쨌거나 이정우는 오버워치 리그에 갈 가능성이 높다. 차기 시즌에 최소 4개에서 6개의 오버워치 리그 팀이 새롭게 창단될 것이라는 소문들이 돌고 있는데, 선수 풀을 메우기 위해선 한국 컨텐더스 팀에서 선수들을 차출할 확률이 높고, 이정우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실력만큼은 인정을 받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OGE' 손민석, '사도' 김수민 등 대리 경력자들이 오버워치 리그에서 가벼운 징계를 받고 뛰고 있는 선례도 있다.

아마 적지 않은 팬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메타에 등을 돌렸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팬들의 응원 대신 성적을 택한 메타이기에 아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떳떳하게 연습해온 다른 팀원들은 무슨 죄인가. 메타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연습을 병행했다던 '리크라이' 정택현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앞으로의 일이다. 여전히 대리 의심을 받는 선수들이 존재한다. 물증이 없을 뿐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대리 선수들을 몰아내고 깨끗한 오버워치 e스포츠를 만들기 위해 증거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만약 대리를 저지른 선수가 있다면 용기를 내서 사과하고, 그에 따른 징계를 받은 뒤 다시 선수로 복귀하길 바란다. 메타의 사례에서 보듯 일이 터진 뒤에 하는 사과는 전혀 효과가 없다. 사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다. 팀과 팬들을 속이고 활동하다 적발되면 팬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좋지 않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팬들이 떠나고 나면, 마지막에 얼마나 많은 팬들이 오버워치 e스포츠의 곁을 지키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