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황금의 어스듐 1화

2018-06-2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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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제1장
듀오 루나의 달들


그날 티노는 조금 화가 나 있었다. 동갑내기인 빌이 아이들 앞에서 티노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빌의 아버지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냥꾼이자 강한 전사인데, 어제 빌을 데리고 마을 밖을 나갔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밖이 아니라 듀오 루나까지!

듀오 루나는 티노가 사는 스플래쉬 아일의 남쪽에 있는 섬이다. 그곳엔 두 개의 달이 뜬다고 들었다. 빌은 이번에 그 두 개의 달을 보고 왔다고 으스댔다. 자세히 말해 달라고 몰려드는 아이들에게 잔뜩 거드름 피우며 백 번을 들어도 그 느낌은 모를 거라고 했다. 그것이 앞으로 백 번은 넘게 떠들어 대겠다는 선전포고임을 티노는 알았다.

할아버지인 램이 심부름을 시킨 것도 있고, 앞으로 숱하게 듣게 될 테니 급할 것도 없고 해서 나중에 들을 생각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그걸 빌이 봤다.

“티노! 넌 안 궁금해?”

“난 공방에 가 봐야 해. 나중에 듣지, 뭐. 어차피 앞으로 백 번은 넘게 떠들어 댈 거 아냐?”

정곡을 찔린 빌은 못마땅한 얼굴로 티노의 속을 확 긁었다.

“하지만 그만큼 들어도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를 거다! 부러우면 너도 데려다 달라고 해라? 아차! 넌 아빠도 엄마도 없지? 그럼 나중에 성인이 되면 가 봐. 위험하니까 준비 잘 하고. 램 할아버지한테 폭탄 몇 개 얻어 가면 되겠네.”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사냥꾼이자 전사인 아버지를 둔 빌은 언제나 거만했다. 또래 중에서 덩치도 가장 크고 힘도 세서 언제나 대장 노릇을 하려 들었는데, 얼마 전부터 아버지한테 전사 훈련을 받기 시작한 뒤로는 그게 더 심해졌다.

티노는 그런 빌이 못마땅하면서 부러웠다. 그도 전사 훈련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빌의 아버지는 램의 허락만 받아 오면 언제든 가르쳐 준다고 했지만 램이 허락할 리 없었다. 램은 티노가 자신의 뒤를 이어 공방을 물려받길 원했기에 기초 군사 훈련을 통과할 수준 이상의 무예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빌이 티노를 걸고넘어지는 건 경쟁의식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빌의 아버지는 언제나 램에게 깍듯하고 공손했는데, 빌은 그것을 불만으로 여겼던 것이다. 램이 국가가 인정한 무기 제작 장인이라는 건 11살의 빌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램과는 티격태격 잘 지내고 있고,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부모님이다. 막연한 그리움은 있지만 뚜렷한 상실감은 없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는 빌의 악의에는 충분히 화가 났다. 그래서 티노는 대책 없이 큰소리치고 말았다.

“아저씨가 널 데리고 갔다 올 수 있는 곳이라면 나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그리고 바로 그것이 티노가 지금 이 밤중에 램의 서랍을 뒤지고 있는 이유였다.

티노는 지난주에 11살 생일을 맞았다. 그때 램은 티노에게 말했다. 이제 11살이 되었으니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그날 생일이랍시고 늦게까지 놀다가 램이 시킨 일을 하나도 안 했더니 기어이 공방에 앉혀서 일을 시키며 약 올릴 겸 한 말이지만 말이다.

무례하고 거만한 빌에게 지기 싫다는 오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램의 말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포장한 티노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램에게는 엑시아 한 대가 있다. 티노는 그것을 몰 줄도 알았고, 열쇠가 어디 있는지도 알았다. 날 때부터 램에게 조기교육을 빙자한 노동력 착취를 당해 온 덕에 티노는 공방의 기술자만큼이나 해박한 지식과 솜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도 작업하는 램 덕분에 집에는 항상 위험물이 굴러다녔다. 잘못 건드려 봐야 손이 베이는 정도로 끝나는 식칼 등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램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주지시켜 왔다. 티노가 말도 떼기 전부터 말이다.

그래서 티노는 비밀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폭탄을 손쉽게 챙길 수 있었다. 램이 직접 설계하여 만든 것으로 성능이 뛰어난 폭탄이었다. 거기에 램이 여분으로 둔 백팩에 코어를 채워 넣은 뒤 등에 멨다.

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댄 것이 아니라 티노가 어찌 되면 살 낙이 없어질 램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 봐 주는 것이 좋겠다. 그는 분노한 것을 넘어서 조금 많이 흥분한 상태였지만 자신이 하려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던 것이다.

램은 티노가 듀오 루나에 갔다 올 때까지도 공방에 박혀 있을 가능성이 컸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쪽지를 남겼다. 램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 나갔다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들키면 혼날 것이 분명하기에 슬쩍 책임 전가를 해 놓은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티노가 사는 마을은 스플래쉬 아일의 가장 아래 해변에 인접해 있고, 듀오 루나는 스플래쉬 아일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엑시아로 이동하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가서 듀오 루나에서만 뜬다는 두 개의 달만 보고 바로 올 생각이지만 혹시 몰라 비상식량도 챙겼다. 램이 기계를 만지느라 밥 챙겨 먹기 귀찮아지면 대신 먹는 보존식품이었다.

거기에 램이 아끼는 사진기도 챙겼다. 성능이 좋아서 밤하늘도 선명하게 찍을 수 있는 사진기다. 티노가 듀오 루나에 갔다 왔다는 증거를 확실히 남겨 놓아서 빌의 입을 틀어막을 작정이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신발 끈을 꼼꼼하게 묶은 뒤 휴대용 조명등을 챙겨 엑시아에 탔다. 티노의 신장으로 몰기엔 크기가 컸지만 요령껏 몸을 앞으로 끌어당겨 손잡이를 잡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기어이 출발해 버렸다.

램 몰래 종종 엑시아를 타곤 했지만 바다 위를 달려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곧 요령을 터득해서 실컷 속도 내어 달렸다. 균형 맞추는 것에 좀 더 주의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방해물이 거의 없는 바다라서 오히려 편했다.

그렇게 한 시간도 넘게 달리고 나서야 티노는 마침내 듀오 루나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듀오 루나는 겉보기엔 마을 밖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듀오 루나 전체가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티노가 도착한 곳 주변에는 인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듬성듬성 나무가 있고, 잡초가 있고, 모래가 있었다. 그리고 조용했다.

하지만 그 적막함이 티노를 주눅 들게 하진 못했다. 그는 지나치게 대범하다는 평을 듣는 램의 손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을 멋대로 헤집고 다닐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았다. 훤하게 트인 곳에서 멀뚱히 있을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티노는 엑시아를 탄 채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해가 지기 전에 몸을 숨길 수 있으면서 주위를 감시할 수 있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적당한 곳을 찾았다. 두 나무가 쓰러져서 교차되어 있고, 그 옆에 바위가 있고, 나무 너머엔 잡초와 부드러워 보이는 모래가 있는 곳이었다.

티노는 바위 옆에 엑시아를 세웠다. 언제든 올라타서 달릴 수 있도록 머리 부분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나무가 교차된 틈새 사이로 들어가 잡초와 모래 위에 털썩 앉았다.

바로 그 순간, 티노의 아래에 깔린 잡초와 모래 등이 일시에 밑으로 꺼졌다. 티노의 몸도 함께였다.

“으아악-!”

무방비하게 주저앉은 상태였기에 티노는 뭔가를 붙잡기 위한 몸부림도 제대로 못 쳤다. 등에 백팩을 메고 있었으나 밸브를 열 여유 따윈 없었다. 그러다 무언가에 세게 후려 맞은 듯이 눈앞이 번쩍하더니, 곧 모든 것이 깜깜해졌다.

* * *

티노가 눈을 떴을 땐 벌써 밤이었다. 어디선가 모닥불 타는 냄새와 소리가 났다. 상당한 높이 위로 밤하늘이 보였다. 썩 밝지는 않았지만 오래된 건물 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운데가 무너져 내려서 위층과 지붕이 보이는 건물의 아래층.

보이는 층수를 보니 3층 정도가 무너져 있었다. 이 아래로도 몇 층이 더 있을지 모르니 운이 아주 나쁜 건 아니었다. 건물의 지붕은 완전히 뚫린 것이 아니라 철근이 드문드문 겹쳐져 있었다. 아마도 그 위에 쌓인 모래와 잡초 위에 앉았다가 이런 변을 당한 모양이다.

지끈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자 붕대가 만져졌다. 그 외에도 화끈거리는 몇몇 부위에 약이 발려 있었다. 누군가가 도와 준 것이다. 막 주위를 확인하려는데 딱딱하지만 듣기 나쁘지 않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신이 들었나?”

소리가 들린 쪽을 보자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주위가 어두운데다, 티노와 모닥불 사이에 앉아 있어서 역광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티노가 아닌 바닥에 놓여 있는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나 하고 무심코 시선을 내리자 매우 익숙한 물건이 놓여 있었다. 바로 램의 폭탄이었다. 그중 몇 개는 터져서 잔재만 남아 있었다. 제대로 터뜨렸다면 이 주변이 남아날 리가 없다. 저건 자폭한 거다.

티노는 램의 폭탄에 대해서는 램 다음으로 잘 알고 있다. 램은 폭탄을 만들 때면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외부에서 강제로 뜯으려 하면 약하게 자폭하도록 만들곤 한다. 저것은 바로 그런 흔적이었다. 잔해가 쌓여 있는 꼴을 보니 한두 개 말아먹은 것도 아니었다.

만약 이마에 붕대가 감겨 있지 않았더라면, 그 외의 자잘한 찰과상 위에 약이 발려져 있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몸 위에 그의 겉옷으로 보이는 것이 덮여 있지 않았더라면 11살의 순수한 티노는 마음이(또는 빈정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그자가 말아먹은 숫자만큼 티노가 램에게 기합 받는 일수가 늘어날 테니까. 그것도 더하기가 아닌 곱셈으로.

“아, 저기, 고맙…….”

“고맙다는 인사는 됐다.”

남자의 음성은 여전히 딱딱하고 냉담했다. 어찌 들어도 겸양의 의미로 말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깨 먹은 폭탄의 잔재를 손으로 툭 쳤다.

“이것 때문에 구해 준 거니까. 난 남의 것에 함부로 손대지 않는 주의거든.”

이미 충분히 손댔잖아?! ……라고 울컥 치밀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강도가 세지는 않았다. 그가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정도는 알고도 남았으니까. 거기다 얼마든지 저것만 가지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 않은가?

그래도 고맙다는 말은 안 하기로 했다. 그 말은 저 남자의 흥미를 끌 만큼 대단한 폭탄을 만들어 낸 램한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이곳에 몬스터가 없는 건 확인했으니 아침이 되면 나가라.”

아무리 씩씩하고 대범하고 용감하다 해도 11살 된 부상자인데 옆에 있어 줄 생각은 들지 않는지 남자는 딱딱하게 말하고 일어났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백팩이 있으니 여길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남자가 남은 폭탄 전부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걸로 계산을 끝내지.”

“웃기지 마!”

이런 날강도 같은 놈! ……이라고 자신의 상태도 잊고 벌떡 일어났던 티노는 밀려오는 두통과 현기증에 머리를 움켜쥐고 끙끙거렸다. 통증과 분노에 상대가 자신을 구해 준 은인에다가 연장자라는 것을 기억 저편에 날려 버렸다.

“치료비라면 지금까지 당신이 부숴 먹은 걸로도 충분하거든? 그게 얼마짜린 줄 알아?!”

“네 목숨 값보다야 싸겠지.”

“전혀! 그걸 전부 잃어버리면 그때야말로 내 목숨이 위험하니까! 할아버지가 날 통째로 잡아먹으려 들 거야!”

티노는 거기다 덧붙여 코웃음을 쳤다.

“거기다 그거 내부가 궁금하나 본데, 그래 봐야 소용없어! 몇 개가 있든 넌 그거 못 뜯어! 우리 할아버지의 특제 폭탄이니까!”

“할아버지?”

남자는 반문하며 티노를 바라봤다. 그렇다 해도 티노 쪽에선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티노는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는 얼굴로, 어쨌거나 그건 못 준다는 의지를 가득 실어 남자를 빤히 봤다.

사실 못 줄 이유도 없고, 그가 가져가려면 막을 방도도 없었지만 묘하게 오기가 났다. 자신이 보답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대가로 가져가려는 것에 대한 어린 반발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폭탄을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그냥 가 버리지도 않았다. 무시하고 가져가려면 가져갈 수도 있었을 텐데, 본인이 말한 대로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성격인 듯했다. 그 ‘함부로’의 기준이 일반인과 많이 다른 것 같긴 하지만.

“그럼 넌 이것의 작동 원리에 대해 아는 게 있…….”

그는 문득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아니다. 꼬마가 뭘 안다고. 그럼 세 개만 더 가져가겠다.”

“우리 할아버지는 알아주는 무기 제작 장인이라고! 당연히 원리니 설계 등에 대해선 모르지! 할아버지의 특제 폭탄이니까! 하지만 그거에 대해 할아버지 다음으로 잘 아는 건 나야! 내가 옆에서 도와 드리니까!”

발끈해서 버럭 소리 지른 티노는 다시 맹렬하게 울리기 시작하는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끙끙거렸다.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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