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아만전사 카르고 24화

2019-07-1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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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전사의 꿈을 꾸는 아케니아 혈족
[데일리게임]

땀으로 인해 얼굴의 털이 흠뻑 젖은 두카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엘린 아가씨에게서 칭찬을 들으니 마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어 아로나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땀을 닦아 주자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덜덜 떨려 왔다.

“고, 고마워, 아로나.”

“고맙긴. 날 지켜 준다고 그토록 고생했는데 이 정도야 뭘. 활 쏘느라 힘들었지?”

그 말을 듣자 두카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사모했던 엘린 아가씨의 관심은 엑스터시보다 더한 희열을 안겨 주었다.

늪 히드라로부터 시작된 사냥은 목표로 잡았던 네임드 몬스터 라돈을 사냥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라돈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아로나는 충분히 동료로서의 역할을 했다. 신체재생력이 유난히 탁월한 라돈에게 아로나의 저주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고 라돈이 죽으며 내뿜은 순도 높은 신력은 아로나의 실력을 월등히 증진시켜 주었다.

이곳으로 오며 사냥해 온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아로나가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강력한 종류들이다. 그 몬스터들의 신력을 흡수한 탓에 그녀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증진해 있었다. 저주의 위력도 한결 더 강력해졌고 더욱 강한 정령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흠……. 파티에 정령술사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군.”

사냥을 마치고 난 뒤 카르고가 내린 평가에 아로나는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두카에게 감사했다. 두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녀는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고마워, 두카. 네 덕분에 모험가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되었어. 모두가 네 덕이야.”

조심스럽게 마음을 털어놓은 아로나가 얼굴을 붉히며 두카의 볼에 입을 맞췄다.

“어흐흐흐.”

마치 술에 잔뜩 취한 듯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두카를 포르나가 빙그레 웃으며 쳐다보았다.

파티에서 유일한 사제로 충분히 제 몫을 해내고 있는 포르나는 침묵의 치유사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탁월한 치유 능력을 검증받았다. 항상 묵묵히 뒤에서 최전방의 전사들을 치유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인해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두 여덟 명으로 역할이 정해진 카르고의 파티는 라돈의 시체를 정리하고 난 뒤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했다.

솔직히 라돈은 얻을 수 있는 명성 외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 몬스터였다. 그나마 등뼈에 난 뿔과 질긴 가죽이 비싸게 팔리긴 했지만 파티원들은 그 정도 푼돈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자들이다.

몬스터 도감을 꺼내어 뒤적이던 두카가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돌아가는 길에 보스 몬스터가 하나 있는데 잡고 갈까? 스파이더 퀸 파이시스라는 녀석인데 근거지를 털면 꽤나 짭짤할 것 같아.”

그러나 대부분의 동료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돈보다는 돌아가서 마실 맥주 한 잔이 더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귀찮은데 그럴 것 있나?”

“그리 유명한 놈도 아닌데 털어 봐야 얼마 나오겠어?”

두카가 쓴웃음을 지으며 몬스터 도감을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그럼 뭐 그냥 돌아가도록 하자. 사냥할 몬스터가 모자라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의견이 일치되자 파티원들은 라돈의 시체를 미련 없이 내버려 두고 레나르로 발길을 돌렸다. 레나르로 가면 다음 사냥감이 정해질 때까지 여관에서 푹 쉬며 벌어 놓은 돈을 쓰면 되기 때문에 일행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헉, 허억…….”

숲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으로 두 그림자가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었다. 2미터를 넘어서는 키에 비늘이 돋아난 우람한 체구. 정신없이 도주하는 그림자는 아만족이었다. 두 눈이 공포에 물든 채 필사적으로 다리를 놀리는 그들의 몸은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점점 뒤쳐지는 동료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힘을 내, 비오넬. 반드시 벗어날 수 있어.”

그러나 뒤따라오는 동료는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한 듯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악명이 자자한 스파이더 퀸 파이시스의 독에 중독된 상태였던 것이다. 말을 건 아만족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파이시스가 쫓아오고 있다고.”

그러나 땀을 비 오듯 흘리던 비오넬은 결국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앞서 가던 아만족도 달리는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 동료를 부축했다.

앞장서서 달리던 아만족의 이름은 네이만이었다. 발렌시아드 연합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케니아 혈족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연히 거주지에서 살아가고 있어야 할 네이만이 무슨 연유로 이곳에서 필사의 도주를 하고 있을까?

네이만은 모험심이 뛰어난 데다 끊임없이 바깥세상을 동경해 온 아만족이었다. 아만족은 태어날 때 평생 해 나가야 할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에 따라 직업이 대장장이로 결정된 네이만은 그에 대한 교육을 받아 왔다. 하지만 평생 망치로 쇠나 두드리며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 네이만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드문드문 아만족의 주거지를 방문하는 모험가들은 그런 네이만의 가슴에 계속해서 바람을 불어넣었다.

“오! 덩치 좋은데? 필드에 나가면 웬만한 몬스터는 달려들지도 못하겠어.”

“사내라면 당연히 야망을 가져야지. 혹시 우릴 따라 필드를 누빌 생각 없어?”

물론 모험가들이 바라는 것은 엄연히 아만족의 노동 능력 하나뿐이었다. 힘이 좋은 아만족 하나만 데리고 다닌다면 일행의 짐을 모두 떠맡기는 것은 물론, 틈틈이 무기 수선을 맡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 네이만은 결국 사탕발림에 넘어가 거주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거주지를 몰래 이탈해서 자신을 유혹한 모험가의 파티에 합류했다.

“절 파티의 일원으로 끼워 주세요. 거주지를 떠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으니 밖에서 몰래 만나도록 하지요.”

“호. 용기 있는 아만족이로군. 그렇게 하지.”

가출을 결행한 네이만은 그렇게 해서 거주지 밖에서 파티와 합류했다.

네이만이 들어간 파티는 상당히 규모가 컸다. 전사가 네 명에 마법사 세 명, 사제 두 명, 궁수 셋이 포함된 열두 명이나 되는 대인원이었다. 물론 그 파티에서 네이만의 역할은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짐꾼의 역할을 수행하는 허드레 일꾼이 바로 네이만의 역할이었다. 처음에 했던 사탕발림과는 달랐지만 네이만은 그 사실에 별달리 불만을 갖지 않았다. 자신의 주제를 금세 알아차린 것이다.

필드에 나와 처음 몬스터를 접한 네이만은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심지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파티원들은 그런 네이만을 드러나지 않게 비웃었다.

‘역시 허풍선이 아만족다워.’

‘덩치가 저토록 당당하면서 왜 저렇게 겁이 많지?’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네이만이 생각 외로 쓸모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장장이 출신답게 네이만은 쉬는 시간이면 파티원들의 무기를 모조리 손봐 주었다. 일행의 짐을 모조리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메리트였기 때문에 파티원들은 네이만을 받아들인 것을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 덕에 네이만은 순탄하게 필드를 누빌 수 있었다. 그러나 네이만이 속한 파티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리더인 발키르가 느닷없이 보스 몬스터 사냥을 계획한 것이다.

도박을 즐기던 전사 발키르에겐 제법 많은 도박 빚이 있었다. 그것을 갚기 위해 파티의 능력으로는 벅차기 그지없는 보스 몬스터인 스파이더 퀸 파이시스의 사냥을 나선 것이다.

그들은 준비를 철저히 하고 보스 몬스터 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네이만은 그 과정에서 필드에서 돌아다니며 거의 보지 못한 동족을 한 명 보게 되었다. 자신과 같은 아만족이 파티에 합류를 요청한 것이다. 그가 바로 비오넬이었다.

“스파이더 퀸을 잡으러 간다고 들었소. 나도 끼워 주시면 안 되겠소? 내 목적은 사냥이 아니오. 그곳 근처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 내 목적이오.”

비오넬은 튼튼한 어깨를 가진 덩치 좋은 아만족이었다. 대관절 누구를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일꾼이 하나 더 늘어서 나쁠 것이 없었기에 발키르는 비오넬을 파티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혹시라도 사냥에 성공한다면 일손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서 망설일 이유란 없었다.

비오넬의 합류로 네이만이 가장 기뻐했다. 드러나지 않게 따돌림을 시키는 동료들보다는 허심탄회하게 속의 심경을 내비칠 수 있는 동족이 대하기 편했기 때문이었다. 대관절 누구를 찾아가는지는 모르지만 비오넬은 네이만의 일을 많이 거들어 주었다.

오랜 행군 끝에 파티는 마침내 파이시스의 레어에 도착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보스 몬스터 사냥에 들어갔다. 그러나 보스 몬스터 파이시스는 그들 파티의 능력으로는 너무도 벅찬 상대였다.

파이시스의 턱에서 뿜어지는 독액은 사제의 해독 능력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준비해 간 해독 포션으로도 역부족이었다. 주변이 온통 맹독을 품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독하는 시간보다 중독되는 시간이 월등히 짧았기 때문에 파티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도 파이시스는 지능이 유달리 뛰어난 보스 몬스터였다.

네 명의 전사와 치열하게 싸우던 파이시스는 후방의 사제가 해독 주문으로 전사의 독을 해독하자 망설임 없이 손을 썼다. 꽁무니의 방적돌기로부터 머리카락 굵기의 거미줄을 실타래처럼 풀어내 뿌린 것이다. 워낙 얇았기 때문에 사제들은 전혀 기미를 눈치채지 못했다.

사제 하나가 얼굴에 와서 달라붙은 얇은 실을 잡아뗐다.

“뭐, 뭐지? 앗, 따가워.”

거미줄이 품은 맹독에 의해 어느새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때서야 경각심을 느낀 사제들이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거미줄들이 주변을 빽빽이 뒤덮은 상황이었다.

결국 사제 둘은 전사들을 해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자신들을 집중적으로 치유해야 했다. 그러나 치유 주문을 외울 수 있는 마나는 한정되어 있었고 파이시스는 끊임없이 거미줄을 토해 냈다.

마나가 바닥나는 것은 순간이었다. 결국 두 명의 사제는 거미줄 타래에 완전히 잠식된 채 독기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사제가 무력화되자 전사들이 쓰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크어억…….”

온몸이 녹색으로 변한 전사 하나가 맥없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파이시스가 내뿜은 독액을 정통으로 뒤집어쓰고 완전히 중독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전사들이 하나씩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졌다. 독액을 뒤집어쓰지 않았지만 주변을 잠식한 독기가 몸속에 누적되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키르 역시 휘청거리다 무릎을 꿇었다.

“크으으.”

파이시스의 독액을 흠뻑 뒤집어쓴 발키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놓아 버렸다. 마법사와 궁수들 역시 독기로 인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전사들이 모두 쓰러졌으니 파티의 운명은 뻔했다. 마지막으로 발키르가 쓰러지자 그들의 눈에 절망감이 어렸다.

“도, 도망쳐!”

그들은 쓰러진 전사들을 내버려 둔 채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더 이상 싸워 봐야 시체만 늘리는 꼴이 될 터였다. 그러나 파이시스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뒤쫓았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둥지로 기어 들어온 먹잇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마법사와 궁수들은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파이시스의 독액을 덮어쓰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독 때문에 다리가 마비되어 제대로 도망칠 수 없었으니 예정된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만족 둘만은 탈출에 성공했다. 종족의 특성상 독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파이시스가 사로잡은 동료들을 거미줄로 묶는 사이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나 독에 대한 아만족 특유의 저항력도 거의 한계에 이른 상황이었다.

네이만이 착잡한 표정으로 비오넬에게로 다가갔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 비오넬이 그를 보며 떨리는 손을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나, 나는 아무래도 그른 것 같아. 그러니 내 부탁 좀 들어줘.”

“무슨 부탁이지?”

“이, 이 서찰을 한 사람에게 전해 줘. 그의 이름은…….”

그러나 네이만은 더 듣지도 않고 비오넬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 우선은 달아나는 것이 우선이야.”

그런데 그를 들쳐 업으려던 네이만의 얼굴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짐을 아직까지 짊어지고 있었군.”

등에 멘 동료들의 짐을 바닥에 내려놓은 네이만이 비오넬을 들쳐 업으려고 했다. 그러나 비오넬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파이시스의 독기가 이미 뇌까지 잠식해 들어간 것이다. 품속에서 꺼낸 손에는 봉인된 서찰이 한 장 들려 있었다. 떨리는 음성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이, 이것을 좀 전해 줘. 받을 사람은 바로 카, 카르고라는 분이셔.”

“카르고?”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기에 네이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때 바로 지척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카르고? 설마 카르고에게 보내는 서찰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깜짝 놀란 네이만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단의 파티가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