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아만전사 카르고 26화

2019-07-15 11:26
center
[데일리게임]

외마디 일성과 함께 카르고가 두 자루의 도끼를 거침없이 파이시스의 머리통에 쑤셔 박았다.

퍼어억.

수박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파이시스의 머리통이 그대로 박살이 나 버렸다. 파이시스가 제아무리 생명력이 끈질긴 곤충형 몬스터라도 머리를 잃고도 살 순 없는 노릇이다.

쿠우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머리 잃은 파이시스의 몸뚱이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죽은 보스 몬스터의 몸으로부터 순도 높은 신력이 쭉 뿜어져 나왔다.

가볍게 사냥에 성공한 카르고의 파티원은 눈을 살짝 감은 채 몸속으로 파고드는 신력의 기운을 만끽했다. 그것은 일행의 뒤에서 주뼛거리던 네이만과 비오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순수한 신력이었기에 그들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두 아만족의 눈은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세, 세상에…….”

비오넬이 입을 딱 벌리며 놀라워했다. 그를 이곳으로 보낸 제사장 파야곤으로부터 카르고가 아케니아 혈족 최후의 전사라는 말을 들었지만 저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열두 명의 파티원들도 잡지 못했던 파이시스를 혼자서 가볍게 가지고 놀다가 도끼질 몇 번으로 숨통을 끊어 버리다니.

특히 네이만의 놀라움이 컸다. 지금껏 파티를 따라다니며 여러 번 사냥을 경험했던 그였다. 그런데 사냥에서 저토록 쉽게 몬스터를 잡아 본 기억은 없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사냥한 몬스터들 중 가장 강한 보스 몬스터 파이시스를 말이다. 지금까지 잡은 몬스터들은 무려 서너 시간 이상 혈투를 벌여 모든 인원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 아만족 중에 저토록 강한 전사가 있다니 놀라워. 다른 혈족 전사인가?”

그때 옆에 있던 비오넬이 설명해 주었다.

“저분은 우리 혈족이야. 아케니아 혈족의 마지막 혈통을 지닌 전사이시지.”

그 말에 네이만이 깜짝 놀라 비오넬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강한 분이 아케니아 혈족이라는 것이 사실이야?”

비오넬이 흔들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강력한 전사 카르고와 같은 혈족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저분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파견되었어. 제사장 파야곤 님으로부터 받은 서신을 전해야 했거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직접 만나 보니 정말 대단하시군. 저분을 봐! 아케니아 혈족은 결코 약하지 않아.”

“그런 것 같군. 실력 있는 전사들을 몇 명 만나 보지 않았지만 저토록 강한 전사는 보지 못했어. 만약 저분의 혈통이 아케니아 혈족에 이어진다면…….”

네이만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의 생각이 현실이 된다면 세상 그 누구도 더 이상 아케니아 혈족을 얕잡아보지 못할 것이다. 파이시스의 시체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카르고의 모습은 그들의 확신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 * *

카르고의 파티원은 즉각 그곳을 정리했다. 그들은 먼저 누에고치처럼 묶여 있는 포로들을 풀어 주었다. 포르나의 해독 주문에 마비독이 풀리자 그들은 환히 밝아진 안색으로 생명의 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저,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두카가 싱글거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혹시라도 파이시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 있어? 그렇다면 빨리 말해 줘. 후딱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 굴뚝같으니까 말이야.”

파티의 리더인 발키르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이 당해 내지 못했던 보스 몬스터 파이시스를 장난처럼 가볍게 때려잡은 막강한 파티에 시비를 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그럴 리가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마땅히 잡으신 분들께 전리품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지요.”

바로 그때 카르고가 입을 열었다.

“굳이 전리품을 챙길 필요가 있나?”

그 말에 파티원들의 시선이 카르고에게로 향했다.

“서둘러 돌아가서 쉬는 게 낫지 않을까? 전리품을 챙기는 것보다는 맥주 한 잔 생각이 더 간절해.”

그 말에 파티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긴 해. 전리품 싣고 가려면 수레도 만들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 말이야. 변변찮은 놈이라 레어를 뒤져 봐도 그리 값나가는 것도 없을 거야.”

“맞아. 푼돈 몇 푼 버는 것보다는 돌아가서 맥주 마시는 게 더 중요하지.”

“나도 찬성이야. 저 덩치 큰 놈 가지고 가려면 번거로워.”

파티원들의 생각이 일치되자 두카가 빙글빙글 웃으며 발키르를 쳐다보았다.

“동료들이 귀찮다고 하니 파이시스의 시체를 넘겨줄게. 전리품은 알아서 챙기도록 해.”

뜻밖의 행운에 발키르의 파티원들은 눈을 부릅떴다. 파이시스라면 족히 백 년 이상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보스 몬스터로 레어를 턴다면 전리품이 상당히 짭짤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한다고 하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도박 빚 때문에 파이시스 사냥을 계획했던 발키르 아니던가?

“그, 그래 주신다면 저희야 고맙죠. 그런데 그렇게 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라돈 잡고 오느라 우리도 많이 지쳤어. 원래대로라면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너희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사냥하게 된 거야.”

발키르가 두말없이 입을 닫았다. 라돈이라면 파이시스 정도는 견줄 수도 없는 막강한 보스 몬스터이다. 라돈의 사냥에 성공한 파티라면 파이시스가 눈에 차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발키르가 희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우리는 가 보겠어. 다음에 또 보자고.”

그 말을 마치고 카르고의 파티가 떠나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명이 더 붙어 버렸다. 카르고에게 서찰을 전하러 온 비오넬과 지금껏 발키르 파티의 일꾼이었던 네이만이었다. 카르고의 활약상에 홀딱 반한 네이만은 즉각 카르고에게 다가가서 파티의 일원으로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부디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니 일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 카르고 님의 활약을 보니 몸속에 잠자고 있던 전사의 피가 들끓는 기분입니다.”

카르고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쉽게 보기 힘든 혈족 중 하나의 부탁이니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자. 네가 몸속에 잠자고 있는 전사의 피를 일깨운다면 나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니 말이다.”

물론 카르고의 파티원들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키르 파티는 두말없이 네이만의 탈퇴를 받아들여 주었다.

막강한 카르고 파티의 일원이 된 네이만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그 모습을 비오넬이 아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도 카르고 님의 곁에 머물고 싶지만 제사장 파야곤 님께 돌아가야 하니 어쩔 수가 없어.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어.”

“안타깝군. 혹시라도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찾아오도록 해.”

카르고가 네이만을 받아들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케니아 혈족에게는 하나같이 전사의 피가 잠들어 있었다. 그것을 일깨워 준다면 당당히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는 전사로 각성할 가능성이 있었다. 전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케니아 혈족의 사정이다.

생각을 접은 카르고가 우렁차게 고함을 질렀다.

“그럼 레나르로 돌아간다!”

파티원들이 카르고의 뒤를 따라 귀환을 서둘렀다. 그 뒤에는 남겨진 발키르의 파티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죽은 파이시스의 시체와 레어의 전리품을 챙기고 있었다.

제9장

아만족의 칸이 되기 위해 떠나다

레나르로 돌아오자마자 카르고가 폭탄선언을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철저히 카르고를 의지하던 동료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무, 무슨 소리야?”

“이제 떠날 때가 되었어. 내가 아케니아 혈족의 마지막 전사라는 사실을 모두들 알고 있겠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라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고가 조심스럽게 이유를 설명했다.

“대륙 중부에서 다수의 아만족들이 발견되었다. 아마 너희들도 들었을 것이다.”

물론 파티원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가장 먼저 발키온 연합과 접촉한 아만 부족은 아케니아 혈족이다. 카르고의 출신 부족이기도 한 아케니아 혈족은 우연히 정찰병들에 의해 발견된 뒤 발키온 연합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다 불과 얼마 전 대륙의 중부에서 아케니아 혈족보다 월등히 많은 아만족들이 발견되었다. 한 부족이 아닌 여러 부족의 집합체로서 얼음 거인의 지배에서 풀려난 아만족들이 은신처에 숨어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그들이 북부로 진격해 들어가던 발키온 연합의 선발대와 조우한 것이다.

처음에는 쌍방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아만 전사들이 은신처로 접근하던 발키온 연합의 선발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선제공격을 가해 왔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발견되었다.

카르고를 마지막으로 전사의 혈통이 끊어진 아케니아 혈족과는 달리 다른 부족의 아만족들은 전사의 혈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발키온 연합의 선발대를 선제공격한 병력은 바로 아만의 전사들이었다. 그로 인해 발키온 연합의 선발대는 거의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야 했다. 아만 전사들의 전투 능력이 그 정도로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뜻밖의 피해를 입은 발키온 연합은 진군을 멈추고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전력의 아만족을 적대하기보다는 포용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발대가 많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강력한 위력을 보여 준 아만족을 연합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면 발키온 연합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터였다.

게다가 발키온 연합에는 이미 아케니아 혈족이 합류해 있다. 그들의 능력은 발키온 연합에 엄청난 보탬이 되고 있었다. 해서 연합에서는 아케니아 혈족 출신의 사절을 내세워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아만족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대륙 중부의 아만족들은 장고의 회의 끝에 발키온 연합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갓 얼음 거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만족의 입장에서 발키온 연합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적대하는 것이 결코 현명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수십 차례 사신이 오갔고 협상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아만족들은 발키온 연합의 깃발 아래 몸을 의탁하기로 결정했다.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아만족 전사들이 발키온 연합의 전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카르고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케니아의 제사장 중 하나인 파야곤의 전갈에 따르면 발키온 연합에서는 현 아만족의 거주지를 영토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아케니아 혈족 역시 그곳으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전해 왔다. 또한 머지않아 아만족의 대회합이 열릴 것이다.”

“회합?”

“그렇다. 여러 부족의 제사장과 부족 최고의 전사들이 한 군데 모여 아만 연합체를 이끌어 나갈 우두머리와 아만 전사들을 총괄할 칸을 뽑을 것이다.”

“칸?”

“회합을 통해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강한 전사를 선출해 여러 부족 출신 전사들의 지휘를 맡기는 것이다. 인간들의 직위로 따지면 아마 군단사령관 정도 될 것이다.”

말을 마친 카르고가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둘씩 쳐다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사냥을 좀 더 하며 실력을 키우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어. 나는 내 부족이 있는 곳을 찾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아케니아 혈족의 전사로 인정받은 다음 대회합에 참여할 생각이다. 이미 파야곤으로부터 최대한 지원해 주겠다는 확답을 받은 상태이다.”

“하긴 너 정도의 전사라면 충분히 칸으로 뽑힐 수 있을 거야. 너보다 강한 전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김정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