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퍼 26화

2019-07-1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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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이건 뭐야?”

“아까 저놈들이 이거 들고 뛰던 거잖아?”

문득 마지막에 도망치던 병사가 떠올랐다. 그들에게 왠지 모르게 중요한 물건인 듯싶었다.

호퍼가 바닥에 앉아 물건의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이거 전기톱 같은데? 이거 이렇게 끼면 되는 거 같은데?”

호퍼가 물건을 만지작거리면서 부품을 이리저리 끼어 맞추었다. 그리고 시동 로프를 당기자 거친 기계음과 함께 작동되기 시작한다.

“봐. 맞지?”

호퍼가 전기톱의 톱날을 신기한 듯 위로 아래로 열심히 휘두른다.

“이걸 왜 갖고 있는 거지?”

“뭐…… 자를 게 있나 보지?”

“뭘 잘라. 나무하러 온 것도 아니고?”

“와…… 이거 봐라. 돌도 잘려 나가는데.”

호퍼가 바위에다 전기톱을 갖다 대니 금세 바위가 반쯤 잘려 나갔다.

“이것 봐봐.”

어느덧 예리엘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꼬마 미쉘이 호퍼 옆에 붙어서 신기한 듯 전기톱을 바라본다.

“헤헤. 신기하지? 저것도 한번 잘라 볼까?”

호퍼가 미쉘을 향해 싱긋 웃으며 미쉘 옆에 있는 작은 바위 하나를 또다시 잘라 낸다.

“정말 무 잘리듯이 삭삭 잘라지는 게…… 정말 좋은데!”

미쉘과 함께 신이 나서 이쪽저쪽 바위를 자르고 있는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보다 못한 대위가 힘겹게 말한다.

“쯧쯧, 멍청한 녀석…… 그건 TKS-1800A라는 군용무기다.”

TKS-1800A는 전기톱 모양의 무기로 근접전투나 침투작전 시 주로 사용되는 무기다. 톱날은 대재앙 직전 월면기지에서 개발된 다이아몬드 경도의 2배 정도 되는 몬티움으로 만들어졌고 당초 차량 또는 무너진 건물의 철근을 자르는 구조용 장비로 만들어졌으나 일부 기능 개량을 통해 전투용 무기로 탈바꿈시켜 사용하고 있었다.

“뭐? 무기라고?”

호퍼가 이리저리 전기톱을 흔들어 보았다. 작지 않은 크기의 전기톱이었지만 호퍼는 마치 자신을 위한 맞춤형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잘 휘둘러 댔다.

“헤헤…… 이거 무지 재미있는데.”

호퍼는 전기톱이 재미난 듯 이리저리 신나게 휘둘러 본다.

“이제 그만 좀 해.”

보다 못한 대위가 버럭 신경질을 낸다. 그러자 호퍼가 전기톱을 멈추고는 대위에게 터벅터벅 다가선다.

“이봐, 군인 양반…… 누구에게 명령이야?”

“아니 그냥…….”

험상궂은 호퍼의 얼굴에 대위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다.

“네 일이나 똑바로 해. 너희가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어디다 대고 이래라저래라야.”

호퍼가 전기톱을 땅에다 꽂아 버린다. 대위는 호퍼의 기세에 눌려 말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한다. 호퍼는 고개를 슬쩍 돌려 대위 모르게 미쉘에게 살짝 윙크를 한다. 미쉘 역시 살짝 윙크를 한다.

“자. 자. 대위님은 부상자잖아. 그만해, 그만.”

미하일 중위가 애써 호퍼를 진정시킨다.

“그만해요, 호퍼. 이제 미쉘도 괜찮아진 거 같아요.”

“그래 호퍼, 잭슨도 빨리 치료해야 할 것 같아. 대위님도 그렇고.”

호퍼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미쉘을 번쩍 들어 뒤차에 태우고는 자신도 앞차에 올라탔다. 앞차에는 미하일과 호퍼, 아이딘, 뒤차에는 경비대원과 연방군 대위, 잭슨, 이자벨 그리고 미쉘이 탔다. 미하일은 주변에 흩어진 총을 주워 아이딘과 호퍼에게 쥐어 주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챙겨 둬.”

미하일 중위가 앞차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사이드 미러 너머로 가지런히 누워 있는 전사자들과 남겨진 중앙군의 차량이 보였다.

“미쉘, 무섭지 않았니?”

예리엘이 미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다.

“네, 좀 무서웠어요. 그래도 호퍼 때문에 그렇게 겁나지 않았어요.”

“그랬었구나.”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이자벨이 꿈틀꿈틀 정신을 차린다.

“아…… 여기는…….”

그리고는 옆자리에 한쪽 어깨가 피범벅이 되어 있는 잭슨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싫어…….”

이자벨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잭슨에게 떨어져 예리엘에게 안겨든다.

“피 냄새가 싫어요. 그리고 저 사람 무서워요.”

그녀가 예리엘 품속으로 파고든다.

이자벨의 외침에 움찔하며 잭슨이 몸을 움츠리는 순간 예리엘과 눈이 마주쳤다. 예리엘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잭슨의 눈빛이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예리엘도 말없이 이자벨을 안아 주었다.

“미하일 중위님, 저건 뭐죠?”

수도향 고속도로 방면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나는 게 보였다.

“아…… 사실 아까부터 그랬는데 좀 더 다가서면 알겠지.”

미하일 중위가 엑셀에 한층 힘을 가했다. 좀 더 가까워지자 널브러진 차량 몇 대와 쓰러진 군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하일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멀찌감치 차를 세웠다.

“아이딘, 어떻게 하지?”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이것 참…… 일단 좀 살펴보자.”

주변에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부서진 차량 대여섯 대와 움푹 파인 도로를 보니 지나가는 차량을 노리고 누군가 공격을 한 듯싶었다. 아까 자신들을 공격했던 그 ‘반란군’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차량들은…….”

“아니, 왜 그래요?”

“저거 아무래도 우리 하바로프의 차량인 거 같은데…… 그리고 좀 높은 사람들인 거 같아.”

“그래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잘 봐…… 이 차와 모양이 똑같잖아. 이 차들은 벤틀리(Bentley)를 개조해 만든 차량이야. 얘들은 보통 차가 아니라고. 완전 방탄에 웬만한 폭발에도 다 버텨 내지. 게다가 한번 걸어 잠그면 바깥에서는 절대 열 수 없어. 움직이는 벙커라고 불리는 차야. 아무나 탈 수 없어.”

아이딘은 온갖 생색을 내며 차량을 지원해 준 란돌 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민간인이 군용차량을 쓴다는 게 상당히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뭘 그리 생색을 내나 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란돌 대장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할 걸 그랬다. 그리고 문득 굳이 이 차 뒤에 꼭꼭 숨어 있던 경비대원의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죠?”

“일단 내가 내려서 살펴볼게.”

미하일 중위가 문을 열고 내려서는 순간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미하일 중위가 화들짝 놀라면서 문을 다시 닫는다.

“아…… 이거 놈들이 노리고 있는데. 이거 참 쉽지 않겠는데.”

“그냥 마을로 빨리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 그게 말이야. 아무래도 그냥 내빼는 게 영 찝찝해서 말이야.”

“언제부터 그런 훌륭한 군인이셨는데요?”

미하일이 씩 웃는다.

“어. 나름…… 그런데 오늘은 꼭 좀 그러고 싶네. 그리고 저기 부상자들도 좀 있고 말이야.”

그가 창밖 저편으로 꿈틀거리는 부상병들을 가리켰다.

“그럼 어떻게 하죠?”

“아이딘 네가 아까처럼 어떻게 좀 해 보면 안 되겠니?”

좁은 차 안에서 돌팔매질하는 흉내와 구르는 흉내까지 낸다. 아이딘은 어이가 없었다.

“제가 슈퍼맨은 아니라고요. 총알을 피할 수는 없어요.”

“아. 그렇지…….”

“…….”

아이딘은 어이가 없었지만 미하일 중위의 어설픈 여유가 마음에 들었다. 잠시 후 미하일 중위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갑자기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자, 모두 꽉 잡아…….”

미하일이 자동차의 속도를 높여 돌진했다. 적들이 다가오는 차를 향해 총알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차의 속도가 붙을수록 차에 부딪히는 총알의 수가 점차 늘어났다. 미하일 중위는 개의치 않고 좀 더 속도를 올렸다. 어차피 방탄차량이라 어설픈 총질로는 어림도 없었다.

첫 번째 목표는 맨 앞에 뒤집혀 있는 차량 뒤에 숨어 있는 적이었다. 미하일의 차량이 가까워질수록 차량 뒤에 있던 두 명이 미친 듯이 총을 쏘아 대었지만 미하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뒤집혀 있는 차량과 정면충돌을 감행했다. 강한 충격으로 뒤집혀 버린 차량 뒤로 두 명의 적이 멀찌감치 나가 떨어져서 일어나지 못한다.

아이딘이 탄 차에도 적지 않은 충격이 왔다. 호퍼는 앞좌석에 머리를 박아 아프다는 듯 연신 머리를 비벼 댄다.

“괜찮지?”

미하일이 아이딘에게 묻는다.

“네, 괜찮은데요. 비교적…….”

“이 차가 왜 움직이는 벙커라고 하겠어.”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괜찮을까요?”

“뭐 죽기야 하겠어, 아마 괜찮을 거야. 걱정 말고 다시 꽉 잡아.”

미하일은 차를 후진시켜 다시 적들이 숨어 있는 세 번째 차를 노린다.

이번에는 좀 전과 달리 아이딘과 합동공격이다. 앞서 차량에 튕겨 나가는 녀석들을 본 놈들이 차량에 들이박기 직전에 차량으로부터 등을 돌리며 도망친다. 그렇지만 그 틈새를 노려 문을 열고 나선 아이딘이 쏜 총에 두 녀석 모두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들이박힌 차량이 두 바퀴나 구르고 멈추고 나서야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상처 입은 병사들의 신음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다.

“돌팔매만큼이나 총 솜씨도 좋은데 말이야.”

“네, 그러게 말이에요.”

아이딘이 장단을 맞춘다. 혹시나 해서 나머지 일행들은 차 안에 있게 하고 미하일과 아이딘 그리고 호퍼만 차에서 재빨리 내렸다. 빨리 기지로 가자고 징징대는 중앙군 대위에게 미하일 중위가 싫은 소리를 하느라고 약간 지체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호퍼는 부상자를 챙기고 미하일 중위는 권총을 뽑아 들고 혹시나 살아 있는 적들이 있을까 해서 이리저리 적들을 살펴보았다.

“아이딘.”

“네.”

“네가 공격한 사람들은 다 즉사했다.”

“네…… 그러네요.”

“아까 돌에 맞아 죽은 놈들도, 그리고 여기 네 총에 맞아 죽은 녀석들도 모두 한 방에 즉사했다.”

“…….”

“너는 나랑은 많이 다르구나. 실력도 실력이지만 좀 무섭기도 하다.”

“…….”

무슨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미하일의 말처럼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냥 일상적인 일을 하듯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하일의 말이 잊고 싶었던 아이딘의 과거의 기억을 자극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에 빠질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미하일 중위는 아이딘의 어깨를 가볍게 친다.

“정말로 잘했다고!”

아이딘의 눈치를 살폈지만 약간은 석연치 않은 느낌이 계속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암튼 더 이상 살아 있는 적들은 없는 거 같아.”

미하일 중위가 조심스럽게 권총을 권총집에 꽂는다.

삐거덕…….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넘어진 차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군인도 있었고 일반인들도 있었다. 미하일이 이 사람 저 사람 바쁘게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꽤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인 것은 분명했다.

부상자들에게 들어보니 차량 대열은 노만 마을로 향하는 하바로프의 지도자 칼레 랑베르 위원장 일행의 것이었다. 노만 마을에 사는 동생인 루드 의원을 만나러 오는 길에 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경호하던 군인들의 사상자 외에 차 안에 있던 고위층의 피해는 경상 정도로 극히 경미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죠?”

“어서 여길 떠야 할 것 같아. 아무래도 놈들이 다시 올 거 같아. 이 녀석들이 전부가 아니라는군.”

“왜 다시 와요?”

“아마 아까 그 전기톱이랑 다른 배낭 때문일 거야. 그게 놈들에게 필요해서 그걸 찾으러 간 거 같아.”

“대체 전기톱으로 뭘 하려고?”

미하일 중위가 벤틀리를 가리킨다.

“이 차량들은 웬만한 폭탄에도 견뎌 낼 수 있다고. 게다가 한번 문을 닫으면 밖에서 절대로 열 수 없지. 문을 완전히 뜯어내기 전까지는.”

“그래서 아까 그놈들이 이쪽으로 전기톱을 가지고 오려고 했군요.”

“그런 거 같아. 더 이상 시간이 없어. 빨리 서두르자고…….”

미하일 중위는 이쪽저쪽 바삐 움직이면서 행렬을 정비했다. 한시라도 바삐 이곳을 떠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차량에 부상자부터 태우기 시작했다. 이동 가능한 차량은 아이딘 일행의 것까지 포함해도 모두 4대, 억지로 끼워 타도 몇 자리가 부족한 판국이다.

“미하일 중위라고 했나.”

강성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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