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현상금
***
다음날, 또는 몇 시간 뒤.
그리고 마탑 59층.
거주 구역 고급 주점 3층.
회색 머리.
붉은 눈동자.
노란색 고급 정장.
옐로우 클랜의 보스, 교수.
그는 클래식한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래? 이건기가 죽었다고?”
그 앞에 무릎 꿇은 청년.
바로 간부인 파이브였다.
“네. 파이톤과 싸우면서 생긴 부상으로 죽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널 죽인 후에 파이톤과 싸우다가 도망친 그 이상한 놈은?”
“잘 모르겠습니다. 스킬은 쓴 파이톤과 거의 호각으로 싸우는 걸 보면 A급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가 분명합니다.”
“쳇.”
교수는 혀를 차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역시 그런 중요한 물건을 잔챙이한테 맡기는 게 아니었어. 조용히 지내라고 했더니, 멋대로 죽어 버리다니…….”
“그렇게 중요한 물건입니까?”
파이브의 질문에 교수는 한 번 더 혀를 찼다.
“잘하면 MGF 녀석들의 숨통을 조일 수도 있는 문서였지. 너무 잔머리를 굴렸나? 그런 중요한 물건을 그런 잔챙이가 지녔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그건 그렇습니다.”
“에잇.”
교수는 검지로 이마를 두들겼다.
“파이톤하고 싸웠던 그놈 정체나 잘 알아봐. 스탯 도핑으로 스탯을 올린 녀석하고 박빙으로 싸울 정도면, 장차 S급이 될 테니까. 자기가 이건기의 동료라고 했지?”
“예.”
“그럼 아예 이건기에 대해서도 싹 알아봐. 언제 마탑에 들어왔고, 어떤 경로를 통해 탑을 오르는지, 누굴 만났는지 전부 다.”
“지시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똑똑똑.
노크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교수는 문을 보며 물었다.
“뭐야?”
“1층에서 술을 보냈습니다.”
“술? 들어와.”
문이 열렸다.
그리고 손에 은쟁반을 든 바텐더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바텐더는 가죽 의자 옆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로얄 위스키 50년산입니다.”
“오오, 그래? 누가 보낸 거지?”
교수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파이브는 눈치를 보더니 몸을 일으켜 그의 옆에 섰다.
“보내신 손님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일단 드셔 보시죠.”
바텐더는 술을 잔에 따라서 교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교수는 잔을 흔들었다.
그리고 액체가 찰랑거리는 것을 보며 향을 맡았다.
“좋은 술이군.”
“하아아앗!”
바텐더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교수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목적은 교수를 제압해서 인질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액셀러레이션.”
검이 닿기 직전.
교수는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자 갑자기 바텐더의 동작이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뭐지?”
텅 빈 손바닥.
바텐더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며 사라진 단검을 찾았다.
“이걸 찾나?”
교수는 손에 든 단검을 흔들며 술잔을 홀짝였다.
그가 든 검은 분명 바텐더가 그를 죽이려고 휘둘렀던 그것이었다.
“어, 어떻게?”
바텐더는 혼란에 빠졌다.
뺏겼다?
그렇다면 뭔가 동작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교수는 스킬을 한 번 말한 것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실력이 형편없는 걸 보니까 MGF나 길드원은 아닌 것 같은데, 누가 보냈지?”
교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잔을 흔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휘둘러 단검을 던졌다.
툭,
대각선으로 날아간 단검은 바텐더 바로 앞에 꽂혔다.
“다시 덤벼 보든가, 아님 조용히 나가. 좋은 술을 준 보답이야.”
바텐더는 바닥에서 단검을 뽑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교수와 그 옆에 선 파이브를 쳐다봤다.
“응? 아아, 이 친구는 방해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걱정 마.”
교수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는 바텐더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파이어볼!”
바텐더의 선택은 속행.
그는 빈손을 교수에게 뻗으며 힘차게 외쳤다.
스킬로 인해 그의 손에서는 축구공만 한 불덩이가 생성됐다.
“하아아앗!”
발사.
불덩이가 교수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폭발.
불덩이를 쏜 바텐더와 옆에 있던 파이브까지 폭발에 휘말렸다.
방 안 전체로 튄 불씨.
폭발을 듣고 달려온 조직원들이 서둘러 불을 끄기 시작했다.
“보스! 괜찮으십니까?”
방 안에 시체는 하나.
바텐더 복장을 한 신원 불명의 침입자뿐이었다.
“보스? 보스!”
조직원들은 주점 전체를 수색하며 교수를 찾았다.
고급 주점 1층의 저가 바.
카운터 옆자리.
그곳에서 교수와 파이브는 한가로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둘 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교수는 파이브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아까 한 말은 취소해야겠어.”
“예?”
“암살자로선 꽝이지만, 군인으로선 아주 최고야. 아까 그 친구.”
“그럼 MGF에서 보낸 걸까요?”
“아마도? 녀석은 우리가 MGF와 문서 이야기를 할 때 들어왔어. 아마 날 인질로 잡아서 문서의 행방을 캐물을 작정이었겠지. 근데 애초에 그걸 MGF에서 빼돌린 건 우리가 아니라 길드란 말씀이야. 우린 그걸 다시 길드한테서 가져온 거고…….”
파이브는 술잔을 단번에 비웠다.
그런 다음 인벤토리를 열어서 5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냈다.
“라울은 어떻게 할까요?”
“제거해야지. 널 보내 달라고 동전을 꺼낸 거 아니야? 앞면이 나오면 너, 뒷면이 나오면…….”
파이브는 급한 마음에 교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전을 위로 튕겼다.
빙그르르.
그의 손에 떨어진 동전.
두 사람은 미소를 지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파이브는 교수에게 고개를 숙인 후 주점을 나갔다.
교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잔을 들어 올렸다.
“딕이 알면 화내겠는데?”
***
마탑 10층 거주 구역.
건기 일행은 치안대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현상 수배부서’ 사무실에 들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치안대원이 세 사람을 맞았다.
그는 건기, 태구, 윌리를 차례차례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 명은 애늙은이.
한 명은 삼류 떠돌이.
그리고 목발을 진 아이.
뭔가 이상한 조합이었다.
“정식 현상금 사냥꾼 등록을 하려고 왔는데요.”
“그러시군요.”
척 봐도 어설픈 신입들.
치안대원은 셋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이건기요.”
“이, 건기 씨. 계좌는요?”
“이건기555.”
“좋습니다.”
치안대원은 외눈을 눈을 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건기의 스탯창을 확인했다.
“무난하시네요.”
짧은 감상.
그것으로 현상금 사냥꾼 등록이 모두 끝났다.
치안대원은 책상에서 가죽 표지의 정식 통행증을 꺼내 거기에 무어라 적었다.
“다 됐습니다. 이 정식 통행증은 20층까지 통행이 가능합니다.”
MGF에서 발행하는 정식 통행증.
길드에서 발행하는 임시 통행증.
둘 다 20층마다 있는 검문소를 통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두 통행증의 차이점이라면, 정식은 자격을 갖춰서 심사를 받아야 하고, 임시는 그 자격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었다.
즉, 마탑을 오르는 루트는 MGF와 길드, 최소 둘 중 하나에서 경력을 쌓아야 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등록 완료.
다음은 현상금 차례였다.
건기는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현상 수배범을 죽여서 가져왔는데, 어디에 내려놓을까요?”
치안대원은 방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탁자를 가리켰다.
“저기에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얼굴이 위로 가게 해서 눕히세요.”
건기는 태구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러자 태구는 인벤토리를 열어 그 안에서 다섯 구의 시체를 꺼냈다.
김촌상.
로스.
글랙.
마일.
파이톤.
다섯 시체가 탁자 위에 놓였다.
치안대원은 디지털카메라로 다섯의 얼굴을 찍었다.
그런 다음 카메라와 컴퓨터를 USB선으로 연결해 방금 찍은 사진을 옮겼다.
컴퓨터는 저장된 현상 수배 목록과 전송된 사진을 비교했다.
그리고 빠르게 다섯 인물의 정보를 모니터에 띄웠다.
“아, 아니!”
치안대원의 입이 쩍 벌어졌다.
[D김촌상, 50만 원]
[D로스, 50만 원]
[D글랙, 백만 원]
[D마일, 백만 원]
넷은 잔챙이.
중요한 것은 남은 하나였다.
[A파이톤, 10억 원]
“잘못 봤나?”
치안대원은 눈을 비볐다.
그러나 모니터에 뜬 글자는 변하지 않았다.
“자, 잠시만요.”
치안대원은 유선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송신음이 두 번 울리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실 문이 열리며 치안대원들과 함께 층대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헉헉, 정말 A급 수배범이야?”
“충성!”
층대장.
그는 10층의 치안대를 총지휘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조차 A급 수배범을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그만큼 이곳은 변두리 중의 변두리, 그저 1층과 상위층을 잇는 통로에 불과했다.
그러한 층들을 묶어서 흔히들 ‘굴뚝’이라 불렀다.
“우와! 이걸 어떻게 잡은 거야?”
치안대원들은 시체를 무슨 신기한 동물처럼 구경했다.
건기는 층대장을 보면서 최대한 밝고 활기차게 웃었다.
“현상금은 제대로 나오겠죠?”
“무, 물론입니다. 당장 상부에 보고를 하겠습니다. 이봐, 이분들 커피라도 한 잔씩 드려!”
층대장은 전화를 하기 위해 잠시 방을 나갔다.
그 사이, 치안대원들은 세 사람에게 커피를 타서 건넸다.
“도대체 어떻게 해치우신 겁니까? 이야기 좀 들려주십시오!”
영웅담을 기대하는 눈초리.
건기는 뜨거운 커피를 내려놓은 후 화장실을 핑계로 방을 나왔다.
“후우.”
씁쓸한 한숨.
사실 건기는 파이톤의 시체를 본 직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그를 죽일 수 있었던 이유는 건기의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단 건기와 싸우기 전에 입은 중상 덕분이었다.
그 때문인지 가게에선 적극적으로 행동하던 파이톤이 공동묘지에서 싸울 땐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도대체 누구한테 그런 부상을 입은 거지?”
한 가지 확실한 사실.
그것은 아직 건기의 기량이 A급을 상대하기엔 부족하단 점이었다.
게다가 죽다 살아나서 얻은 스킬의 사용법은 불분명.
어쩐 일인지, 전체 스탯도 한 단계씩 줄어 있었다.
건기는 앞뒤로 하체를 털고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가 거기서 그랬지! ‘이놈들! 이 어르신이 바로 천하의 태구 님이시다! 받아라!’라고.”
“오오!”
방 안은 감동의 도가니.
건기가 없는 사이,
태구가 치안대원들에게 구라를 치고 있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윌리의 표정은 심히 썩어 있었다.
건기는 화기애애한 무리를 돌아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까 내려놓은 커피 잔을 들었다.
커피는 아직 미지근한 상태.
그는 입김을 열심히 불어서 커피를 서늘하게 식혔다.
“더럽게 힘드네.”
겨우겨우 식힌 커피를 한 모금.
달콤쌉싸름한 액체가 입안에 퍼지며 묵직하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후우.”
이번엔 안도의 한숨.
방 안으로 돌아온 층대장의 표정이 밝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계좌로 이체해 드릴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단번에 거금 10억.
특히 태구는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거, 건기야…… 그…….”
약속한 바에 따르면 4대6.
계산하면 그의 몫은 4억.
단, 약속은 어디까지나 능력을 사용한 절도에 한했기에 나눠 주는 것은 건기의 자유였다.
태구는 안절부절못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절대 나눠 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 그……!”
‘1억만이라도!’
태구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이 목구멍을 미처 넘어오지 못하고 맴돌았다.
그는 말 때문에 숨이 막혔다.
“아참, 저희가 우연히 마총을 주웠거든요. 아무래도 MGF쪽 물건인 것 같아서요.”
“장물 신고는 저희 부서 소관이 아니지만, 처리해 드리죠.”
이 방은 엄연히 현상 수배부서.
장물 신고는 ‘생활 민원부서’담당이었다.
그러나 A급 수배범을 잡은 영웅을 위해 치안대원은 기꺼이 수고를 대신해 주기로 했다.
물론 별것 아닌 수고였다.
건기는 태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제야 태구는 제정신을 차리면서 인벤토리에서 마총을 꺼냈다.
“분명히 저희 MGF마크가 찍힌 물건이군요. 어디서 발견하셨죠?”
“황야에서요.”
황야.
추적이 힘들고,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운 곳.
얼버무리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셋은 층대장을 포함한 치안대원들에게 배웅을 받으며 치안대 건물을 나왔다.
개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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